화장품 사업을 하고 있는 S사 대표는 요즘 절망에 빠졌다.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야심차게 출시한 신제품이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S사는 1년 전부터 시장·제품·소비자 분석을 바탕으로 시장상황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곡물 화장품을 출시했다. 그런데 막상 출시 시점이 되니 예상을 뒤엎고 곡물 대신 허브 화장품이 떠버린 것이다. 1년 동안 수많은 분석과 검증과정을 거친 제품이 이렇게 무너지고 나니 깊은 한숨만 나온다.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방법이란 없는 것일까?
소주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제품이 무엇일까? 맥주나 막걸리 같은 대체품은 당연히 포함되지만, 여기에 TV도 포함된다고 한다.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이 생기면 사람들이 집에서 TV를 보느라 회식 자리를 줄이게 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렇듯 예측할 수 없는 제품들이 갑자기 회사의 경쟁자로 떠오르는 현상을 `초경쟁상황`이라고 한다.
이러한 초경쟁상황에서는 경영환경이 빠르게 변한다. 아무리 꼼꼼하게 환경을 분석하고 회사의 역량을 파악하여 사업전략을 수립했다 하더라도 막상 실행에 옮길 때는 회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완전히 변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변화하는 상황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자기 회사만의 몇 가지 원칙을 정해서 일관되게 실행함으로써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성공적으로 대처해나가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계적인 네트워크 장비 회사인 시스코는 수많은 인수합병(M&A)을 바탕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여러 기업을 성공적으로 인수한 만큼 시스코만의 복잡 정교한 분석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시스코는 오히려 간단하지만 일관된 몇 가지 원칙만으로 인수기업을 선정한다. 바로 `직원이 75명 미만이고, 엔지니어가 전체 직원의 75% 이상인 기업만 인수한다`는 것이다.
시스코가 이런 원칙을 세운 것은 수많은 인수합병을 거치면서 성공적이었던 M&A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업 규모가 크고 뚜렷한 기업문화를 가진 회사보다는, 소규모지만 기술력이 뛰어난 신생회사를 통합 인수하는 때가 성공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스코는 피인수 기업의 규모를 제한하기 위해 `직원이 75명`이라는 기준을 세웠고, 기술 중심의 회사들을 걸러내기 위해 `엔지니어 비중이 75%를 넘어야 한다`는 원칙을 만들었다.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블록 장난감으로 유명한 레고는 아이들이 질리지 않게끔 새로운 제품을 꾸준히 시장에 내놓는 것이 주요 성공요인이다. 레고는 예측 불가능하게 변화하는 아이들의 취향을 그때마다 따라가기보다는 신상품을 만들 때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원칙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맞춰 새로운 제품을 출시한다.
첫째, 이 제품만 보더라도 레고가 만든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가? 둘째, 아이들이 놀면서 배울 점이 있는가? 셋째, 경쟁사보다 우수한 품질인가? 넷째, 부모들이 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도록 거리낌 없이 허락할 수 있는 것인가? 다섯째, 아이들의 창의성을 자극할 수 있는가? 이 다섯 가지 원칙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 제품은 시장에 나갈 수 없다.
두 회사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시스코와 레고 모두 변화하는 시장에 대한 복잡한 분석 대신 사업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신들만의 몇 가지 원칙으로 전략적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기업마다 다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대부분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 `어떤 타이밍에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것인가?` `어떤 제품을 출시할 것인가?` `어떤 사업을 퇴출시킬 것인가?`에 대한 원칙이다.
문제상황의 S사 역시 외부여건이 빠르게 변화하는 업종이므로 많은 요인들을 정밀하게 분석하기보다는 수익이 발생하는 핵심을 파악해 몇 가지 단순한 원칙을 만드는 것이 좋다. 핵심은 우리 회사가 어디에서 돈을 벌고 있는지다. 시스코는 M&A, 레고는 신제품 출시가 돈을 벌기 위한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이처럼 사업상 핵심이 되는 부분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일관된 원칙을 만들고 실천하면 예측 불가능한 경영환경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표] 초경쟁상황을 돌파하는 원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