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열반 두 개의 교실이 있다. 우등반에는 학생이 3~4명뿐이다. 이들은 부모의 능력이 뛰어나 과외 등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학업 점수는 100점에 가까운 상위권이다. 선생님은 더 열심히 하라며 우등반에 햄버거 등 간식을 넣어준다.
열등반에는 학생 200~300명이나 된다. 과외는 꿈도 못 꾼다. 점수는 그야말로 바닥이다. 그런 환경에서도 학생 몇 명이 공부해보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생님이 말린다. “열등반 학생은 33점 이상은 넘지 말라”는 것이다. 열심히 해도 33점 이상은 받을 수 없다. 간식은 꿈도 못 꾼다. 평소에 먹던 급식도 앞으로는 우등반에 더 넣어주느라 양이 줄어들 것 같다. 200~300명의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
상식적이라면 열등반에 더 많은 재원과 교육, 관심을 쏟아 붓는 것이 맞다. 특히 공부 하겠다고 나선 똘똘한 아이들은 더욱 키워 우등반으로 보내야 한다. 이들은 벌써 33점에 근접하는 등 `성공경험`을 하고 있다. 성공경험은 다시 이를 재현해내려는 성질이 커 새로운 성공을 만든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열등반의 성공경험을 외면한다. 33점은 넘어선 안 된다며 규제한다.
상식적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이런 일이 방송시장에서 몇 년째 벌어지고 있다. 여기서 우등반은 지상파, 열등반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다. 방송법은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 매출이 전체 PP시장의 33%를 넘지 못하게 한다. 전체 방송시장 매출의 33%를 넘지 못하도록 한 지상파방송사보다 훨씬 엄격한 규제다.
세계적으로 기업이 크지 말라고 매출을 규제하는 곳은 거의 없다. 누구는 100점, 누구는 33점이라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지 않는다. 정부나 정치권 일각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규제 완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다른 사안에 밀려 몇 년 째 공회전을 반복하고 있다.
1년 후인 2015년 3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로 방송시장은 전면 개방된다. 해외파들이 대대적으로 전학 오는 시점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최소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은 마련돼야 한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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