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 명령이 없어도 자동차끼리 교신하면서 교통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차량 간 무선통신(Vehicle to Vehicle:V2V)` 기술 덕택이다.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교통부(NHTSA)는 자동차에 차량 간 무선통신 기술을 장착하도록 하는 규제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교통사고 횟수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 정부는 음주운전이나 기계적 이상을 제외한 교통사고 중 최대 80%를 막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차선 급변경이나 시야 사각지대도 `OK`
V2V 통신은 차량끼리 위치와 속도 정보를 주고 받아 스스로 브레이크 등이 동작할 뿐더러 운전자에게 경고도 한다. 근처 차량이 갑자기 차선을 바꾸거나 운전자 시야 사각지대로 이동하면 알람을 주는 식이다. 추돌을 피하거나 차선을 바꾸고 교차로 충돌을 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자동 제동이나 자동 운전은 아니다. 외신은 V2V 통신 기술이 확산되면 스스로 운전하는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도 한 발 앞당겨질 것으로 관측했다. 차량과 차량에서 더 나아가 차량과 보행자, 차량과 자전거 간 통신 기술로 발전할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 정부는 수년 간 V2V 통신 기술을 위한 연구 개발을 진행했다. 미시건 주에서 3000여대 차량에 V2V 통신 기술을 적용한 시범 프로그램도 1년 정도 운영한 상황이다. 주 정부는 분석 보고서를 내놓은 뒤, 자동차 업체 의견을 듣고 기술 규정을 위한 절차 마련에 착수할 예정이다. 실제 생산까지는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년 이상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상세한 규제는 오는 2017년 끝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임기 내 공표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자동차 절반 이상이 차량 간 무선 통신을 하기까지 최소 15년이 걸릴 것이라고 현지 언론은 예상했다. 장비 장착을 위한 추가 생산비는 대당 100~200달러(약 10만9600원~21만7200원) 정도로 추산했다.
머큐리 뉴스는 이미 여러 자동차 업체가 속도 조절부터 차선 유지, 사각지대 탐색에 이르는 다양한 기술을 내놓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올해 출시되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신형 `S-클래스`는 정지·감속 상태를 파악하는 `디스트로닉 플러스` 기능을 갖췄다. 도요타가 내놓은 차량은 고사양 카메라와 레이더·제어 소프트웨어가 달려 차선을 알아차리고 안정적 위치에서 주행하게 돕는다. 테슬라도 `모델S`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센서를 접목한 안전 기능을 개선했다. 앤서니 폭스 미국 교통부 장관은 “V2V 통신 기술은 안전벨트나 에어백처럼 차세대 자동차 안전장치의 개선을 이뤄낸다”며 “충돌방지 기술로 미국이 세계 자동차산업에서 선두주자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현주소는 `걸음마 단계`
국내에서도 이 같은 기술 개발이 한창이지만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내 V2V통신 기술개발의 시초는 2011년 5월 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차량 간 실시간 무선통신으로 앞차와 사고 등 돌발 상황을 뒤따라오는 차에 직접 전달해 연쇄 추돌을 미연에 방지하는 `멀티홉 방식의 차량간 통신 기술(VMC)`이다. VMC 기술은 최대 200km/h의 고속 이동 중에도 교신이 가능해, 차세대 하이패스에도 적용될 수 있는 신기술로 평가받았다.
현재 VMC는 아직 실용화 이전 단계에 머물러있다. 실용화가 늦어진 가장 큰 이유는 VMC에 사용되는 주파수가 기존 방송중계기 주파수와 중복됐기 때문이다. 차량 간 무선통신과 관련한 법제를 만들는 한편 관련 업계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ETRI는 지난해 스마트폰으로 자동차를 주차하거나 주차된 자동차를 운전자가 내렸던 위치까지 정확히 호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좁은 공간에서 주차에 애를 먹지 않아도 된다. 또 넓은 장소에서 주차공간을 찾는 데 드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자동차가 스스로 주차공간을 찾아 주차를 완료한 내용은 운전자 스마트폰을 통해 위치와 주변 영상이 전송된다. 차량에 5개의 카메라 센서, 10여개의 초음파 센서가 달려 있고 주차 면에도 미리 센서를 설치해 완전 자동 주차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상용화가 되면 주차장의 정보가 담긴 응용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으로 내려받아 사용하면 된다. ETRI 측은 이 기술이 5년 안에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와 별도로 차량 간 커뮤니케이션 뿐 아니라 차량과 도로시설 간에 실시간으로 통신하면서 사고나 장애물을 피하는 차세대 지능형교통체계(ITS)를 개발 중이다. 총 18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차세대ITS 핵심 기술을 2016년까지 개발하고 실제 도로에서 시범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고속도로, 2030년까지 중소도시에 인프라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또 차량과 위치정보 수집, 차량제어에 따른 사고 책임소재, 차량해킹 방지 등을 위한 법제도 정비한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