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움과 안타까움. BETT(British Educational Training and Technology)를 참관한 후에 느낀 두 가지 감정이다. BETT는 매년 1월 하순 영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교육기술박람회다. 올해도 여느 이러닝 국제박람회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플랫폼과 기술이 양적으로 많이 소개됐고 질적으로도 우수했다. 다년간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쌓인 노하우가 절로 느껴졌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트렌드를 제품에 잘 녹여냈다는 느낌이다.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실제 활용성을 염두에 둔 기술이 제품 곳곳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관람객들도 자유롭게 구경을 하면서 교육을 바꾸고 있는 테크놀로지의 힘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제품들 중 유독 이러닝 플랫폼이 눈에 띄었다. 이 플랫폼은 이미 작게는 몇 십, 많게는 몇 천 개의 ‘학교 현장’ 레퍼런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른바 K-12 영역과 고등교육 영역에서 학교에 직접 서비스를 하고 있는 플랫폼들이다. 놀라웠다.
학교 레퍼런스가 벌써 몇 천 개라니. 정부가 교육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중앙 집중적으로 운영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현상이다. 누가 우리나라가 이러닝 강국이라고 했던가. 부끄러움도 밀려왔다.
학교에서 직접 쓸 제품을 위해 고민하고 결정하면 실제로 활용할 때에도 애정을 갖고 더 잘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K-12 영역의 학교에 도입돼 있는 수많은 정부 주도의 이러닝 관련 서비스는 어떤가. 우리는 스스로 고민하고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능동적인 환경인지, 아니면 정부가 정해준 것을 그냥 사용하기만 해야 하는 수동적인 환경인지는 답이 분명하다.
이러닝 세계화를 위해 앞으로 기울여야 할 노력에 대해 몇 가지 제언한다.
첫째, 내수를 탄탄하게 할 수 있는 생태계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애초에 수출을 위해 만들어진 기업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기업은 ‘국내용 이러닝’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 최근 교육시장 자체가 위축되고 어려워져 이러닝 업계의 2014년 화두는 ‘생존’이다. 생존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내수 상황 속에서 수출을 꿈꾸기 어려울 것이다. 수출에 앞서 내수 활성화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둘째, 단편적인 비용 지원보다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이번 BETT에도 몇몇 기업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참가했다. 그러나 전시회 비용지원도 중요하지만 세계화의 노하우가 부족한 기업을 위한 체계적인 관리가 더 중요하다. 세계에 대한민국의 이러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필요한 각종 정보와 노하우를 알려주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닝은 아직까지는 ‘국내용’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세계화를 염두에 둔 이러닝 비즈니스모델을 발굴해야 한다. 교육은 문화적 산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잘나가는 콘텐츠가 해외에서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국내용을 해외에 들고 나가려는 사고와 접근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러닝 세계화를 위해 국내용 이러닝을 ‘재활용’하려고만 애썼다. 애초에 세계화를 염두에 두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가능성 있는 모델을 중심으로 인큐베이팅을 해야 한다.
넷째, 스타 기업을 발굴해 파격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콘텐츠, 플랫폼, 저작도구, 서비스 등에서 영역별로 누구나 알 수 있는 전문기업이 생겨야 한다. 모든 것을 기업의 책임으로 돌렸던 것에서 이제는 산업 전반의 관심사로 넓혀 지원할 필요가 있다. 생색내기 지원이 아니라 파격적으로 지원해 전략적으로 키워줄 필요가 있다. 스타 기업이 한두 개씩 나와야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 있다.
몇 년 후 BETT에서 한국 이러닝 전문 기업이 대규모 전시관을 차려 놓고 방문객을 맞이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형세 한국이러닝산업협회장·테크빌닷컴 대표 hslee@tekvil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