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스타트업 멘토링]<18>그들은 욕망을 은밀히 채우고 있다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조선후기의 3대 풍속화가 가운데 신윤복이 있다. 그의 풍속화는 당시에는 파격적인 남녀 간의 애정과 에로틱한 소재들을 많이 다뤘다. 그 가운데 ‘월하정인(月下情人)’이라는 그림이 있다. 초승달이 높이 뜬 한밤중, 동구밖 후미진 뒷골목 담벼락 아래서 남녀가 밀애를 즐기는 장면이다. 은은하고 요염한 초승달이 떠 있고 밤안개가 담장 위로 넘어오는 은밀한 분위기에서 남자는 초롱불을 들고 여자를 인도한다. 그림 가운데에는 ‘달은 기울어 삼경인데,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안다’는 알 듯 말 듯한 글귀가 쓰여 있다. 분명한 것은 남녀가 그들의 욕망을 은밀히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고객이 누구인가’ 질문하지 말고 ‘우리의 고객은 어디에 있나’를 물어라. 우리 제품 외에도 이미 다른 대안이 많다. 춘향이가 이 도령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듯, 고객은 우리의 제품을 기다리며 정절을 지키지 않는다. 우리 제품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그들의 필요와 욕구를 어디에선가 채우고 있다. 우리의 잠재고객이 지금 어디서 그 욕망을 채우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수년간 교제하던 남자친구보다 더 멋진 남자가 윙크 한번 했다고 곧바로 새 남자의 품으로 달려가는 여자는 거의 없다. 고무신을 바꿔 신는 일도 쉽지 않다. 주고받은 선물과 투자한 시간과 정성을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을 떼는 고통도 힘들다.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맺은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압력도 있다. 애인 관계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과 긴장, 갈등과 스트레스를 다시 겪는 것도 끔찍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감내하더라도 현재 남자친구와의 관계처럼 친밀해질지도 불명확하다. 이것을 경영학 용어로 ‘전환 비용’이라고 한다.

내가 새로 만들어 선보인 제품이 환상적일지라도 고객은 이미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같이 기존 제품으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왔다. 우리 제품으로 건너오는 데는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단지 더 좋은 제품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발상이다.

나의 잠재고객이 지금 어디에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 있는지 그리고 전환 비용이 무엇이고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제품을 설계해야 한다.

순진한 짝사랑에 눈이 먼 창업자들은 어서 눈을 떠라.

프라이머 대표 douglas@prim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