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에이스로 꼽히며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던 농구선수 B. 잘나가던 그는 고대하던 자유계약 선수 자격을 얻게 됐다. 이에 B는 자신에게 걸맞은 연봉이라고 생각되는 높은 금액을 소속구단에 제시했다. 하지만 구단 측은 그가 제시한 연봉보다 몇 천만 원 낮은 연봉 금액을 불렀다. 그에 실망한 B는 소속구단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다른 구단으로 이적을 결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구단에서도 B가 원하는 만큼의 고액 연봉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결별한 소속구단을 다시 찾아갔지만 구단 측은 전보다도 형편없이 낮은 연봉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문제상황은 실제로 우리나라 프로농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B 선수는 현실을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더 구체적으로 상황을 살펴보면, 그는 기대와 달리 다른 구단과의 협상에서 실패한 후 어쩔 수 없이 원래 소속구단과 재협상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샐러리 캡(Salary Cap:팀 내 모든 선수의 총합 연봉 한계 규정)에 묶인 구단에서는 처음 금액의 겨우 5분의 1밖에 해당되지 않는 금액을 제시했다. 결국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최고의 에이스 선수였던 B가 이런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B 선수는 다른 구단에서 연봉을 얼마나 제시할지 먼저 확인하지 않고 소속구단과의 협상을 결렬시키는 잘못을 범했다. 그 때문에 이후 협상에서 매우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협상에서는 또 다른 협상상대가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다. 이를 협상용어로 ‘배트나(BATNA: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라고 한다.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대신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을 뜻하는 배트나는 협상을 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다. 결국 B 선수는 배트나가 없는 상태에서 자기 위주로 협상을 강하게 진행해 이런 최악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B 선수는 어떻게 협상을 진행해야 했을까. 나에게 좋은 배트나가 있음을 상대가 정확하게 인식할 때, 협상 상대는 약해진다. 협상의 대가라고 불리는 로저 피셔 하버드대 교수의 자동차 구매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피셔 교수는 도요타의 ‘코롤라’를 사겠다고 마음먹었다. 같은 차를 파는 딜러들이 제시하는 가격은 대체로 비슷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딜러로부터 좀 더 좋은 가격 조건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던 피셔 교수는 시카고의 자동차 딜러들을 찾아다니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도요타 코롤라를 한 대 사려는데, 다음 세 가지 조건만 만족하면 다른 조건은 전혀 상관없다. 첫째로 에어컨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 CD 플레이어가 있어야 하며, 셋째는 자주색이 아니어야 한다. 이 조건에 맞는 차 중에서 당신이 나에게 팔 수 있는 가장 낮은 가격을 적어 이 봉투에 넣어 달라.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시카고 시내에 있는 모든 도요타 딜러를 찾아가서 똑같은 제안을 하고, 그 중 가장 싼 가격을 적어준 딜러에게서 차를 살 것이다.”
피셔 교수는 실제로 7명의 도요타 딜러를 방문해 견적을 받은 뒤 봉투를 열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모든 딜러가 제시한 가격이 예상보다 훨씬 낮았다. 그 가격은 공장도 가격에도 미치지 않을 만큼 파격적이었다.
피셔 교수가 이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좋은 배트나가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의사가 있음을 확실히 알려준 것이다. 이처럼 협상할 때는 “다른 곳에서 얼마에 살 수 있으니까 그보다는 더 싸게 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해야 한다.
문제상황에서 B 선수는 일단 소속팀과의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른 구단에서 제시할 연봉을 미리 확인해두었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연봉보다 높게 제시한 구단이 있다면 그 제안을 바탕으로 소속구단에 높은 연봉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소속구단보다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구단이 없다면 당연히 소속구단의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혹시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있는가? 그렇다면 배트나 없이는 절대 협상에 나서지 말라.
[그래픽] 농구선수 B는 어떻게 협상에 임해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