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파도보다 바람을 보아야하거늘"

CEO스코어는 최근 발표한 국내 고용분석 동향 자료에서 ‘국내 100대 기업이 양적으로 다른 기업 특히 중소기업보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냈으며 질적으로도 계약직 비중이 중소기업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어서 이른바 경제 민주화를 내걸고 진행되는 대기업 때리기 식 규제는 크게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ET단상]"파도보다 바람을 보아야하거늘"

대기업을 때려서 무언가 얻어내겠다는 정책은 문제가 있지만 통계분석 기사내용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10년 주기 분석 자료에 의하면 대기업은 평균 5만개의 일자리를 줄이고 있는데 반해 새롭게 창업되는 신생 기업을 중심으로 매년 30만개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일자리 창출에 관해서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효자라는 것인데 이번에 내용은 왜 다른 것일까.

우선 규모의 문제가 있다. 내용을 보면 100대 기업의 총 고용인원이 약 70만명에서 82만명으로 12만명이 늘었지만 나머지 약 27만개 기업은 876만명에서 1011만명으로 약 135만명이나 늘었다. 전체 고용 증가인원으로 보면 12만명대 135만명이지만 비율로 따지다 보니 17.6%와 15.5% 증가율 차이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종업원 세 명인 회사에서 일감이 늘어 한 명을 추가로 고용한다면 33% 고용이 늘지만 종업원 1000명인 회사에서 33% 고용을 늘리려면 333명을 추가로 고용해야 한다. 즉 고용 증가를 단순히 비율로 따져 비교하는 것은 전체적인 경제 규모를 고려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기적인 문제도 있다. 통계는 2008~2012년을 분석했는데 주지하다시피 2008년은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급격한 금융경색을 맞은 해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이 경기 후행적인 면을 감안하면 2008년은 많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단기 경기순환 정점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어려움이 대기업도 예외일수 없지만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글로벌 경영을 하고 있고 경기 예측과 대응을 잘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중소기업에는 아주 불리한 타임 프레임을 설정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다.

더 중요한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매출 차이다. 같은 자료를 보면 대기업의 1인당 매출은 14%나 증가한 반면에 중소기업은 19%나 감소했다고 한다. 1인당 매출이 14% 증가한 기업과 19% 감소한 기업 간 고용 증가율 차이가 2% 포인트가 채 나질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중소기업은 극심한 경영난 속에서도 고용을 오히려 늘렸다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매출 단위당 고용인원을 따져 볼 때는 중소기업이 훨씬 고용 친화적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통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맞다. 통계는 통계다. 통계가 항상 진실인 것은 아니다. 통계는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창이지만 보는 방향이나 분석, 가공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작년에 개봉된 히트 영화 중 ‘관상’이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송강호는 자기를 찾아온 김혜수에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봤을 뿐 바람은 보지 못했다. 파도를 일으키는 건 바람이거늘” 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이 기간 동안 대기업이 일반적인 견해와는 달리 중소기업보다 높은 고용성과를 보인 것은 하나의 파도다. 그렇다면 혹시 일부 언론이나 학자의 주장처럼 각종 재원이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 편중 지원된 결과는 아닌지, 양극화 결과의 또 다른 표출은 아닌지, 아니면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에 제대로 클 수 있었던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거래 관계에서 제대로 크지 못한 부분은 없었던 것인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했으면 좀 더 나은 윈윈 성과를 거두었을 부분은 없었는지 등 이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이 무엇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2014년 봄, 경기는 아직 어렵고 예측하기 어려운 경제변수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일자리 창출의 보고다.

서승원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 swseo@smb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