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로 접어든 2002년 7월 중순 어느 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김태현 정보통신부 차관(하나로텔레콤 회장 역임)과 한춘구 정보통신지원국장(한국전파기지국 대표 역임)이 들어섰다. 이재신 청와대 민정수석(수원지검장 역임, 현 변호사)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이 수석과 마주앉았다.
이 수석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 수석=어떻게 돼 가고 있습니까.
△김 차관=그게 좀 어렵겠습니다.
△이 수석=무슨 말입니까.
△한 국장=민영화한 KT에 낙하산 인사를 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글로벌 통신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내부에서 사장을 선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 국장의 말을 듣던 이 수석의 표정이 싹 변했다. 정통부가 청와대에 반기를 든 셈이었다. 두 사람은 거듭 “낙하산 인사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전한 뒤 청와대를 나왔다.
한춘구 당시 국장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그날의 대화 내용이다.
이날 김 차관과 한 국장이 청와대에 들어간 것은 민영화 첫 KT 사장 선임 때문이었다. 민영화를 끝낸 이상철 KT 사장이 그해 7월 11일 정통부 장관으로 입각하자 후임 사장 선임은 통신 업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와 관련한 이상철 당시 정통부 장관(현 LG유플러스 부회장)의 말.
“그런 말이 있기에 청와대에 ‘민영 KT는 새 사장이 누가 오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사장 선임은 KT에 맡기는 게 좋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KT를 민영화해 놓고 정부가 낙하산 인사를 한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일이었습니다.”
한 국장의 회고.
“청와대에서 특정인을 사장으로 보내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왔습니다. 당시는 정통부가 마지막 경영권을 주주총회에서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철 장관에게 사장 추천은 KT 내부에 맡겨야 한다’고 건의했더니 이 장관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김 차관을 모시고 청와대에 들어가 그 같은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이후 정통부는 사장 선임에 관여하지 않았어요.”
KT는 사장 선임을 서둘렀다. 그해 7월 16일부터 22일까지 공모한다는 광고를 일간지에 냈다. 응모자격은 경영, 경제에 관한 지식 또는 경영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정보통신산업 지식과 글로벌 경영감각 △투철한 기업가정신과 미래지향적인 비전 △대규모 조직관리 경험과 강력한 경영혁신 의지를 갖춘 인물로 제한했다. 제출서류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경영 포부 자료 각 한 부였다.
이 같은 절차는 ‘사장은 신문 광고를 통해 후보를 공모하고 사장추천위원회(이하 사추위)가 이들을 심사해 최종 후보자를 결정한다’는 규정이 KT 정관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KT는 7월 23일 비상임이사 3명, 민간위원 1명, 전직 사장 1명 5명으로 사추위를 구성했다. KT 비상임이사로는 황주명 변호사(KT 이사회 의장 역임), 임주환 한국정보통신기술협의회 사무총장(ETRI 원장 역임, 현 고려대 객원교수), 윤창번 KISDI 원장(하나로텔레콤 회장 역임, 현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이 참석했고 민간위원은 윤창호 고려대 교수가, 전직 KT 사장은 이우재 전 사장(체신부 장관 역임)이 맡았다.
22일 서류를 마감한 결과 10여명이 응모했다. 언론에 타천으로 오르내리던 전직 장차관들은 응모하지 않았다. 사추위는 23일 이들에 대한 서류심사를 거쳐 24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개별 면접을 실시했다. 면접자들의 입장을 고려해 이들이 마주치지 않도록 시간과 면접 장소를 다르게 조정했다.
임주환 당시 사추위원의 증언.
“심사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했습니다. 정통부나 외부에서 인사 지침은 말할 것도 없고 압력이나 청탁이 전혀 없었습니다. 면접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면접장소와 시간대를 다르게 조정해 이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했습니다.”
사추위는 7월 26일 이용경 KTF 사장을 새 사장 내정자로 추천했다. 사추위가 구성된 지 나흘 만이었다. 속전속결로 새 사장을 추천한 이유는 외압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이용경 당시 KT 사장의 회고.
“KTF 사장으로 2년 6개월 근무했습니다. 제 판단에 따라 KT 사장 공모에 참여했습니다. 면접에서 KT의 현 문제점과 앞으로 경영 구상을 집중 질문하더군요.”
추천위는 이 사장 내정자가 글로벌 마인드를 갖췄으며 KTF 사장을 역임하면서 전문적 식견과 풍부한 경험을 갖춘 것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임주환 위원의 계속된 회고.
“응모자들을 상대로 서류심사와 면접을 하고 위원들이 최종 회의한 결과, 만장일치로 이용경 KTF 사장을 추천했습니다. 위원들 간 이견이 없었습니다.”
2002년 8월 20일 오전 9시.
KT 민영화의 출발점인 임시 주총이 열린 서울 서초구 우면동 KT 연구개발본부 회의장은 KT 주주로 만원이었다. 임시 의장인 정태원 KT 부사장(KT그룹 희망나눔재단 이사장 역임)이 연단에 올랐다.
“지금부터 KT 임시 주주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정 임시 의장은 곧장 민영화 초대 사장 선임 건을 상정했다. 주주들의 동의와 재청에 이어 박수로 이용경 사장 선임을 의결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이 사장은 “주주가치를 중시하고 주주와 시장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으로 KT를 만들겠다”는 인사말을 하고 정관 변경과 사외이사 선임, 사장 경영계약서 승인 등 후속안건을 상정, 처리했다.
이날 변경된 KT 정관의 주요 골자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경영인 체제 확립 및 사외이사 기능 강화로 경영인의 부실경영 감시 기능 확충이었다.
사외이사는 기존 7명에서 9명으로 2명을 늘리는 한편, 그동안 사장이 겸임하던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가 맡도록 했다. 새 사외이사로는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18대 국회의원, 창조한국당 대표, 현 한솔섬유 사장), 스튜어트 솔로몬 한국메트라이프생명 사장, 장현준 포항공대 초빙교수(중앙일보 논설위원·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 역임)를 선임했다(사외이사였던 이준 전 사장이 그해 7월 11일 국방부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1명은 공석이어서 3명을 선임했다).
기존 KT 사외이사는 황주명 변호사, 박성득 전자신문사 사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 임주환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사무총장, 이기호 이화여대 대학원장(현 한국여성정보인협회 이사장), 최기만 법률사무소 대표, 윤창번 KISDI 원장이었다.
이 사장은 이날 11시 30분 분당 본사 대강당에서 취임식을 갖고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이 사장은 취임사에서 “KT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모범적인 기업, 세계 IT산업을 주도하고 변화를 선도하는 기업, 주주가치와 종사원의 가치가 극대화하는 기업으로 만들겠다”며 “민영화는 형식이 아니라 근본 내용을 바꾸는 변화와 혁신과정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취임식 후 정통부 기자실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도 “통신산업과 IT산업의 선도기업 수장(首長)이라는 점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KT를 모범적인 기업의 표본으로서 세계적인 통신회사와 경쟁하는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경영 포부를 밝혔다.
이 사장은 이어 “최우선 과제는 민영기업으로서 신속성과 효율성 등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기술과 시장을 선도하는 등 KT의 민영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취임 이튿날인 8월 21일 오전 이사, 감사 및 주요 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KT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황주명 사장추천위원회 위원장과 경영계약을 체결했다.
경영계약서에는 사장의 직무와 책임, 보수, 경영목표 등에 관한 사항을 명시했다. 이 사장이 2005년 말까지 달성해야 할 매출 목표는 14조7600억원으로 책정했다. 또 그동안 사장이 겸임하던 민영 KT 이사회 의장에는 황주명 변호사를 선출했다.
이용경 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 버클리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일리노이대 교수, 엑슨, AT&T 벨랩 연구원을 지냈다. 1991년 귀국해 한국통신 기술연구부 연구원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어 한국통신 연구개발단장, 소프트웨어단장, 통신시스템개발센터소장, 무선통신개발단장을 지낸 후 2000년 3월 KTF 사장으로 선임됐다.
외유내강형인 이 사장은 구조개혁이나 사업을 추진할 때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을 발휘했다. 그는 사장 재임 시 통신기술에 대한 전문지식과 추진력, 글로벌 감각을 두루 겸비한 테크노 CEO로 평가받았다.
이 사장은 재임 중 민영화 KT 첫 수장으로서 KT 윤리강령을 제정했고 체질 개선을 위한 대규모 조직개편과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는 평소 “기업이 건전하게 성장하고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이 선결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네트워크로 하나되는 나라’라는 주제로 다양한 캠페인을 전개했다. 2003년 4월 6일에는 KT 혁신을 이루기 위해 제조업에서 사용하던 ‘식스시그마’ 경영을 전격 도입해 경영혁신을 꾀했다.
이어 통신 업계 최초로 사업부별로 분산됐던 회계·물류 업무를 통합 관리하는 공유서비스센터를 운영했다. 2004년 8월에는 미래사회 모습과 KT 역할을 구체화한 ‘KT 미래전략 2010’을 발표했다. 이어 그해 12월에는 북한과 개성공단 통신 공급에 관한 합의서룰 체결했다.
이 사장의 회고.
“KT는 아이디어는 많은데 실행을 못했어요. 공기업 경영 스타일에 익숙해져 위기의식이 없었어요. 글로벌 통신업체에 걸맞은 기업문화로 바꾸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재임 중 정부에서 ‘낙하산’ 인사 청탁이나 외압은 없었습니다.”
그는 민영화 1기 임기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2005년 8월 19일 퇴임했다.
이후 그는 KAIST 겸직교수를 거쳐 2008년 3월 정계에 입문, 18대 국회에서 창조한국당 대표를 역임했다. 민영화를 통한 글로벌 통신기업 도약을 표방하며 출범한 민영 KT호는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전리품처럼 CEO 인사를 놓고 몸살을 앓았다.
‘국민 기업 KT’라는 구호가 무색한 ‘오너 없는 KT’의 서글픈 현실이자 한계였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