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미래 `창의자본`]정부계약과 지식재산권 보호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언론과 방송 등 뿐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도 어떤 사안을 두고 우위에 있는 사람을 갑(甲), 열등하거나 불평등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을(乙)이라고 지칭한다. 두 사람의 불평등하고 어느 당사자 쪽으로 일방적인 관계를 ‘갑을’이라고 말한다. 나아가서 같은 갑이지만 아주 우월하면 예를 들어 대기업인 경우 ‘슈퍼 갑’이라고 지칭한다. 갑이 우월한 입장에서 무엇을 행하거나 불이익을 주고자 하면 ‘갑의 횡포’ 또는 ‘갑질 횡포’라는 표현으로 자학적이고 냉소적인 용어가 일상화 내지 유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미래 `창의자본`]정부계약과 지식재산권 보호

원래는 ‘갑·을’이라고 하는 것은 계약서에 계약당사자를 짧고 알기 쉽게 표현하기 위한 표기상 수단이었다고 짐작된다. 언제부터인지 이런 뜻과 별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맨 처음에는 계약 관계에 있어서 계약의 실체, 누가 계약과 관련해 강자이고 약자인가를 나타내는 의미였겠지만, 의미가 확대돼 불평등하고 일방적이며 수직적 관계 등을 묘사하는 부정적 의미로 변질되어 왔다.

그런데 정부 계약과 관련된 계약서에서도 대체로 정부를 갑, 계약상대자는 을이라고 주로 표현한다.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도 거의 모든 계약에 있어서 갑의 역할을 한다. 가령 정부 등이 계약서에 을로 표기되어 있더라도 실제로 갑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정부계약 관련 계약서가 일반 기업끼리의 계약에서도 샘플이 되기도 한다.

기업이나 계약 상대자 입장에서 보면 계약관계가 비록 ‘갑을’이라고 하더라도 정부 계약 시장은 놓치거나 방관하고 있을 시장이 아니다. 따라서 갑의 요구를 충실히 들어 주려고 노력하며 이것이 다음 계약을 보장받는 길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갑질 횡포’에 해당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갑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다.

계약 상대자 입장에서는 자기 기업만이 보유한 영업 비밀이나 자기 기업만이 가진 고유한 노하우(Know-how) 등이 있다. 영업 비밀이나 노하우는 그야말로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고, 경쟁관계 회사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과거에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는 분이 정부 조달 공고가 나서 응찰하려고 하는데, 자기 기업의 중요한 영업비밀이라고 생각하는 방수기술에 대한 페인트 혼합 비율을 공개·작성해 내라고 계약담당 공무원이 요구해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상담자는 혼합비율을 작성해 제출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불이익을 받을 것 같은데, 혼합비율은 자기 기업 영업비밀이라 제출이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비록 계약담당 공무원에게 제출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방수 노하우가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출된다면 자기 기업 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돼 고민이 된다고 염려했다. 규격과 맞지 않은 경우에는 특허권이나 실용신안권 등의 포기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계약 이행 확보와 효율적인 운용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다년간의 시간과 노력, 자본이 투입돼 개인의 재산권으로 보호되는 지식재산(IP)권을 ‘사실상’ 함부로 침해하는 행위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살펴보면 정부 계약 공정성, 계약 이행 확보, 결과보다 절차가 중시되는 특성, 재정의 효율적 운용 등이라는 점도 국가 전체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명제 중 하나다.

IP권 보호와 정부 계약 분야에서는 정부계약 집행 효율성과 이행확보, 공정한 집행이라는 명제와 개인 재산권인 IP보호가 서로 충돌된다고 생각된다. 어느 한쪽 입장만을 강조하면 다른 쪽 이익을 침해하거나 제도 실효성을 없앨 수도 있다. 두 제도가 서로 제도 취지에 맞게 상생하는 적절한 접점을 찾아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먼저 정부계약 법령 중 계약당사자의 IP권을 침해할 요소는 없는지, 계약 체결과 이행 과정에서 계약상대자의 IP권을 지나치게 보호해 정부계약 시장이 왜곡되거나 집행에 있어서 공정성을 해치게 되지는 않는지, 또는 IP권 보호제도를 우회하려는 가능성이 없는 지등에 살펴봐야 한다. 정부 계약분야에서 IP권과 관련해 최소한 앞서 언급한 ‘갑을’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계승균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doktorkye@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