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1조원 규모의 의료IT를 수출할 수 있게 됐다며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미국이나 유럽이 독식해 온 해외 의료IT 시장에 ‘한국형 의료IT’가 수출된다는 점이 집중 부각됐다. 기업의 동반 진출의 기대도 한껏 부풀려놨다.
지금은 어떤가. 당초 장관 합의에 따라 맺기로 한 정부 간 협약은 일정 조차 잡지 못한 채 유야무야 됐다. 동반진출의 꿈을 키워온 민간 기업은 글로벌 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공개 경쟁입찰 상황에 직면했다. 일부 업체는 직접 진출의 부담감 때문에 아예 포기했다.
왜 그랬을까. 양국 장관 합의에도 불구,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우디 정부에게 문제가 있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양국 정부의 합의 내용이 발표되자 현지에서 수주 준비를 해온 다국적 기업들이 사우디 정부를 대상으로 집중적인 로비를 벌였다는 얘기도 있다. 사우디가 정부 간 협약이 아닌 경쟁입찰로 발주한 배경이다.
우리 정부의 안일한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실제 협약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샴페인부터 터트렸다. 정부는 홍보에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사업 준비를 했던 민간 기업에게는 혼란만 야기했다. 사우디에서 귀국하자마자 사임한 진영 복지부 전 장관도 구설수에 올랐다. 홍보에만 치중했던 탓이다. 장관이 교체되면서 범정부 차원의 지원노력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당서울대병원 컨소시엄 등 일부 기업은 사우디 의료IT 시장 진출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다. 이제는 누구를 탓할 게 아니라 국익을 위해 민·관이 다시 힘을 모으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복지부만이 아니라 범정부 차원으로 힘을 모으자는 것이다. 외교 라인의 적극적 지원도 필요하다. 민간 기업도 ‘코리아 원 컴퍼니’를 고민해야 한다.
사우디 등 중동 시장은 경제력이 풍부한 이머징 시장이다. 중동은 의료 기술적으로나 서비스 측면에서도 드라마 한류에 이어 의료IT 한류도 가능한 시장임이 분명하다. 다시 한번 민간은 물론 범부처 차원에서 의료IT 한류의 씨앗을 사우디에 우선 뿌려주길 기대한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