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느 분야를 가나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야기꾼으로 살아가고, 이야기로 비즈니스를 하고, 이야기 짓는 법을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부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통해 표현된 고대 신화까지 그 폭이 매우 넓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중요하다 거론하는 ‘이야기’가 그 모든 이야기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즈음 중요하다고 가치를 부여받는 ‘이야기’는 아마도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생산자가 목적하는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인물, 사건, 배경의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열해 만들어낸 이야기’
이런 목적을 달성한 이야기가 훌륭한 콘텐츠가 되어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만으로 훌륭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콘텐츠가 되려면 콘텐츠를 담는 매체 문법에 맞춰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매체문법에 통달하기 위해서는 문자 그대로 ‘배고픈 수련기간’을 견뎌내야 한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까지도 수련만 하며 엄청난 좌절을 겪어야 한다. 그러는 사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사라지기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자체가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작가의 머릿속에만 머물다가 세상에서 없어지기도 한다.
문법을 익히지 못했더라도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이야기꾼이 행복하게 창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야기가 콘텐츠 제작의 씨앗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가능하다. ‘이야기 상품’이 훌륭한 콘텐츠로 제작할 수 있는 다음 단계의 프로들 손에 쥐어질 수 있다면 많은 ‘예비 작가’들에게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수련 기간 동안 배고프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콘텐츠 제작자들은 보다 다양한 ‘꺼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야기 생산과 유통과 소비에 그야말로 산업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야기 상품의 형태, 거래를 할 수 있는 마켓(시장), 성숙한 소비 행태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 플랫폼이나 이야기 에이전시도 필요하다.
이야기 자체가 상품이 될 수 있다면 우리 역사 속에 묻혀있던 많은 원석들도 빛을 받을 수 있고, 콘텐츠의 날개를 입고 온 세계를 날아다니는 것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승정원일기 같은 역사 이야기 뿐 아니라 웅덩이 하나, 계곡 하나마다 숨어있는 그 많은 이야기들이 발굴되고 유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야기는 이런 씨앗이기만 할까. 콘텐츠 산업의 한 부속이기만 할까.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고 싶은 것이 과연 콘텐츠 제작자만의 욕심일까. 이야기에는 이것보다 훨씬 큰 능력이 숨겨져 있다. 마케팅 분야에서 상품에 이야기를 덧입히는 ‘스토리텔링’은 이미 효과를 검증받은 기법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빌딩 기법은 비즈니스 전략에도 활용될 수 있고, 상품 기획, 교육 콘텐츠, 관광 콘텐츠 개발, 전시 기획, 정책 홍보, 인수합병(M&A) 및 이후 통합 전략, 가치 내재화 프로그램 개발 등 펼칠 수 있는 분야가 끝도 없다.
이야기를 만들고 전하는 근본적 목적이 ‘공감’인데 현대 사회에서는 ‘공감’이 모든 사회활동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야기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력’을 무수한 산업과 접목시켜 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것은 이야기 산업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인식은 보편적이지만 이야기를 독립된 산업으로 인정하고, 육성하고, 연구하는 나라는 아직 없다. 유달리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에 강하고, 5000년 역사 속에 이야기를 품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야기 산업에 있어 선두주자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창조 산업의 힘으로 문화 선진국이 되는 흥미로운 길을 ‘이야기 산업’을 통해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김희재 올댓스토리 대표 storyteller@allthatstro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