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특허 소송 전략이 바뀌었다. 1차 판결에서 삼성전자 제품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이 기각되면서 금전적인 타격에 무게중심을 두는 분위기다. ‘돈’으로 삼성전자에 피해를 주기 위한 애플의 공세는 향후 더욱 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삼성전자뿐 아니라 안드로이드 진영 전체에 긴장감을 주려는 효과를 노린 의도로도 해석됐다. 애플이 문제삼은 특허는 모두 안드로이드 기기의 핵심 기술이다. 안드로이드 연합의 시장 경쟁력을 약화시켜 하드웨어 혁신이 한계에 다다른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유리한 입지를 가져간다는 전략도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애플은 이달 31일 예정된 2차 특허 소송에서 5개 핵심 특허에 대해 스마트폰·태블릿PC 한 대당 40달러의 특허료를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특허 전문가는 “애플이 현실적으로 이런 금액을 삼성전자로부터 받아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재판부에 애플이 침해 당한 5개 특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효과는 있다”고 말했다.
애플은 과거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소송전을 벌일 때도 무리한 금액을 제시하면서 초기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 바 있다.
반대로 애플이 출구 전략을 준비 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겉으로는 더 강경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서는 협상을 대비하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최근 애플 법무팀에는 강경 대응론자들이 뒤로 빠지고 협상 전문가가 일부 전진 배치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통상적으로 큰 기업 간 특허 소송은 합의로 마무리된다. 이때 특허료는 손해배상 금액을 책정하는 기준이 된다. 애플이 삼성전자와 협상에 들어갈 때를 대비해 손해배상액을 최대한 불려놓았다는 분석이다.
특허 침해 고의성 여부도 애플이 공략하는 부분이다. 미국은 특허 침해 고의성이 입증되면 최고 3배까지 손해배상액을 늘릴 수 있다.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최악의 경우 삼성전자는 10조원이 넘는 금액을 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 애플은 제2차 소송에서 처음 제시한 특허료가 깎이더라도 일정 금액 이상 수준으로 방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안드로이드 진영 전체를 겨냥한 것도 제2차 특허 소송의 특징이다. 애플이 문제삼은 5개 특허는 안드로이드 운용체계(OS)의 핵심 기술이다. 소송 결과에 따라 삼성전자를 포함한 안드로이드 진영 업체 모두가 소프트웨어(SW)를 변형해야 할 수도 있다.
정동수 특허법인 수 변리사는 “얼마 전 구글과 삼성전자가 크로스 라이선스를 맺은 것도 애플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며 “애플은 삼성전자 등 경쟁사가 애플의 특허를 필요 이상으로 신경쓰도록 해 제품 완성도를 떨어뜨리거나 판매 시기를 늦추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애플이 삼성전자와 특허전에 더욱 매달리는 것은 스마트폰 하드웨어 혁신이 한계에 봉착한 현 상황과도 궤를 같이한다. 과거처럼 기술로 치고 나가기 어려워지면서 특허를 무기로 후발 업체들의 추격을 늦출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