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 없는 업종의 두 회사가 어느 순간 한 묶음이 됐다. 10여 년 전 공기업 민영화 때엔 그럴 만했지만 이후 별 탈 없이 가면서 같이 언급될 일은 없었다. 고작해야 전경련 회장단 모임 정도였다. 이명박정권 때 다시 함께 거론됐다. 이유는 명예롭지 않았다.
정부 지분 하나 없는 두 회사에 ‘낙하산’ 꼬리표가 붙었다. 최고경영자(CEO)는 정권 교체 후 바뀌는 자리가 됐다. 새 전통을 따라 KT는 1월 말 황창규 회장, 포스코는 지난주 권오준 회장 체제가 출범했다. 그나마 ‘낙하산’ 낙인이 덜한 것이 다행이다. 두 회장이 현 정권 실세와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나 경쟁자도 그랬으니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두 회장은 각각 세계 반도체와 철강 기술 최고봉에 앉았던 사람들이다. 기술인은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사내외 정치에 둔감한 사람들로 여겨진다. 기술인 출신 CEO 선임 자체로 두 회사는 ‘낙하산’ 멍에를 벗을 수 있게 됐다. 관건은 향후 행보다. KT 자회사 CEO에 현 정권 전 수석을 선임한 것과 같은 일이 또 나온다면 낙하산 논란은 다시 고개를 치밀 것이다.
기술인에겐 ‘기술밖에 모른다’는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이 있다. 이 점에서 부문 CEO를 경험한 황, 권 회장은 경영인으로서 어느 정도 검증됐다. 다만 진정한 검증은 지금부터다. 기획, 재무, 전략까지 경영 능력을 보여 덧씌워진 스테레오타입을 스스로 깨야 한다.
시험대가 당장 펼쳐졌다. 수익성 악화 해결이다. KT는 지난 4분기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경쟁사 선방과 비교해 심각한 실적이다. 포스코도 지속적인 수익 악화에 시달린다. 2008년 7조 원대 영업이익이 지난해 3조원 밑으로 내려갔다.
두 회사 수익성 악화가 시장 탓도 있지만 방만 투자로 생긴 부실 탓이 더 크다. 이 부실을 빨리 떨어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칫 미래 먹거리까지 잃을 수도 있다. 두 CEO가 이를 잘 분별하는 통찰력을 보여야 한다.
본연의 경쟁력 회복이 핵심이다. 두 회사 위기의 본질은 무엇보다 각각 통신과 철강이라는 본업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한눈을 팔면서 이렇게 됐다. 낙하산 문화로 조직 전체가 멍들었다. 있는 조직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니 업계 맏형 역할도 버거워졌다. 조직을 재정비해 기술력과 마케팅을 결합한 응집력을 되찾는 것이 두 회사 CEO의 최우선 과제다. 재무 건전성, 미래 가치 제고도 이 역량 회복 없이 오지 않는다.
황 회장이 ‘통신 대표기업 일등 KT’를, 권 회장이 ‘위대한 포스코’를 내걸고 기술과 현장 중심 경영을 선언한 것은 바람직한 선택이다. 대폭적인 인사 물갈이와 조직 슬림화로 의사결정 속도를 높인 것도 긍정적이다. 힘이 강한 취임 초기에 조직과 인사 장악 없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는 일이다.
철강과 통신은 전통산업이지만 미래 기술혁신 씨앗이기도 하다. 철강은 소재, 에너지와 같은 신기술 산업과 융합할 여지가 많다. 통신은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사업의 기본 인프라다. 포스코와 KT가 제 역량과 자부심을 되찾으면 각 분야에서 미래 기술과 산업 혁신을 이끌 자격은 충분하다.
두 회사는 더 자주 함께 언급돼야 한다. 특히 기술 CEO가 온 다음 혁신으로 거듭난 국민기업이라는 명성에 반드시 같이 거론돼야 한다. 그래야 ‘여전히 낙하산 공기업’이라는 비웃음이 사라진다. 황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신용등급 하락, 자회사 불법 사기대출 연루 및 법정관리, 개인정보 유출이 한꺼번에 터져 골머리를 앓는다. 두 CEO는 이런 악재도 더 극적인 반전 시나리오를 위한 포석쯤으로 삼을 일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