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난망, 해 바뀌었는데 제자리···책임지는 사람 없는 `복지부동` 전형 비판도

국가 재난안전무선통신망(이하 재난망) 사업이 지난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이후 12년째 표류하면서 정책 당국이 국민 안전을 너무 뒷전에 두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일선 소방서와 경찰서는 재난망 사업 결과가 나오지 않아 연한이 지난 노후 통신 장비를 교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자칫 재난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을 못해 대형 사고를 부르는 극단적인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우려는 정책당국의 관심소홀과 이해당사자인 망사업자의 과열경쟁이 더해지면서 지난해 6월로 예정됐던 예비타당성조사결과 발표마저 수차례 연기되는 등 현실화하고 있다.

17일 안전행정부와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개발연구원(KDI), 통신장비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진행 중인 재난망 예비타당성조사가 지난해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안행부는 2012년 기재부에 예비타당성조사를 요청했고 지난해 2월 KDI가 조사 용역에 착수했다. 무선통신 기술인 테트라, 와이브로의 성능과 안정성, 경제성 검토가 핵심이다. 당초 지난해 중반께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지금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안행부 관계자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어 현재로선 특별히 해줄 얘기가 없다”며 “기재부 주관이다 보니 구체적인 일정 등 우리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어서 KDI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KDI 역시 정확한 결론이 언제쯤 나올지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시각이다. 아직 안행부와 논의해야 할 사항이 있어 이를 확인하는 단계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쟁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고 전했다.

KDI 관계자는 “다른 조사와 달리 재난망은 두 가지 기술을 검토하다 보니 조사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며 “하지만 올해 안에는 무조건 결론을 내야 한다는 의지는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단일 이슈인 다른 과제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어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지난해 6월께 결과를 발표하겠다는 것은 애초에 비현실적이었다”고 해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의 쟁점은 ‘투자비용 대비 효용성(benefit cost ratio)’이다. 프로젝트 효용성을 비용으로 나눈 수치가 1 이상이 돼야 사업 타당성이 있다는 의미다. KDI가 안행부에 제시한 수치는 와이브로와 테트라 모두 1이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두 기관은 기지국 설치 범위와 방식, 예산 규모를 놓고 의견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KDI가 제시한 예산이 안행부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는 설명이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 이 같은 결과가 나왔고 최근까지도 두 기관 사이에 갑론을박이 이어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업계와 관가 주변의 말을 종합하면 이 같은 갑론을박과는 달리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업이라 책임지고 추진해야 할 부처와 담당자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사업이 오랜 기간 지연되면서 국민 안전을 보장한다는 취지는 이미 빛이 바랬다.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데도 소방서 등 관련 기관은 여전히 노후 통신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안행부에서 중복투자를 막기 위해 예비타당성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주파수공용통신장치(TRS) 등 장비 구매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무선통신 장비 업계도 울상이다. 한 무선통신기기 전문업체 관계자는 “중소기업으로선 적잖은 예산을 투자해 2008년 제품을 개발했고 이후 후속 모델까지 만들었다”며 “지난해부터 계속 사업이 연기되면서 수년째 제품만 만들고 팔 데가 없어 사업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왜 결과 발표가 늦어지는지 구체적 설명이 없어 여러 업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업계에 도는 얘기처럼 투자 대비 효용성이 나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빨리 사업 포기를 발표해야 각 공공기관이 새로운 장비 교체작업에라도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 재난안전망 추진 현황

자료:정부, 업계취합

국가재난망, 해 바뀌었는데 제자리···책임지는 사람 없는 `복지부동` 전형 비판도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