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진료 선시범 합의로 제도화 가닥…집단휴진 철회 가능성

정부와 의사협회가 오는 4월부터 6개월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키로 하면서 원격의료 문제는 제도화에 한발 다가선 것으로 평가된다. 시범사업을 통해 원격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한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양측이 입법 추진 자체를 원천 차단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17일 오전 각각 동시에 의·정 협의 결과를 발표했다. 핵심 쟁점 중 하나였던 원격진료제도에 대해 양측은 선시범사업을 거쳐 전화 진료, 핸드폰 진료, 컴퓨터 진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한 후 이를 입법에 반영하기로 했다.

또 시범 사업의 기획·구성·시행·평가에 의사협회의 의견을 반영하기로 합의했다. 협상을 주도한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의사협회가 정부와 시범사업을 공동수행하기로 해 시범사업에서 원격진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객관적으로 검증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정부는 우선 원격의료 도입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이후 시범사업을 펼쳐 문제를 파악하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혀 ‘선시범사업-후입법’으로 한발 물러섰다. 24일 2차 집단휴진을 앞두고 ‘의료대란’이 우려돼서다.

그러나 양측이 이번 협상에서 ‘4월부터 6개월 동안’이라는 시범 사업의 일정과 기간까지 구체적으로 합의한 점이 주목된다. 시범사업 추진 및 평가까지 시간이 부족할 수 있지만 일단 이 기간이 지나면 평가 결과를 토대로 입법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뜻이어서 원격의료는 제도화까지 진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보건복지부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은 “시범사업에서 안전성·유효성이 검증되면 그 내용을 반영해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원격의료에 대해 합의안이 도출된 건 정보통신기술(ICT)을 의료 서비스와 접목,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원격의료 도입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의협이 현실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는데 무게를 뒀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노환규 의사협회 회장은 “입법 전 선시범사업을 펼쳐 검증한 후 이를 입법에 반영하기로 한 만큼 여러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평가하며 “이 때문에 정부가 원격진료와 관련해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시기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원격의료 시범사업의 범위와 대상에 관심이 쏠리지만 당장의 관건은 의사협회 회원들의 찬반 투표다. 의사협회는 이번 협의안을 놓고 17일 오후 6시부터 20일 낮 12시까지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부결되면 협의안이 전면 무효화돼 예정대로 24일 총파업에 들어가게 된다. 속단은 어렵지만 정부가 의사협회의 요구를 적잖게 수용했고 24일부터 29일까지 6일간 예정된 집단휴진은 의료계에도 부담이 될 것으로 보여 철회 가능성이 점쳐진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원격의료와 관련한 이번 의·정 합의가 기만적이라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시범사업을 시행해 결과를 반영하겠다는 내용만 있을 뿐 원격진료 추진을 중단하겠다는 얘기도, 법안 추진을 중단하겠다는 얘기도 없다”며 “원격진료 허용 법안을 추진하면서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병행하겠다는 것은 원격진료 허용을 추진하기 위한 시간벌기용 꼼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