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공기관 장비 선정, 특정 스펙 강요 안된다

정부의 공공기관 국산 장비 우선 구매 제도가 정책 취지에도 불구하고 겉돌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의 ‘네트워크 산업 상생발전 실천 방안’이 발표된 지 채 일주일도 안 돼 곳곳에서 불공정 시비가 일고 있다. 일부 공공기관에서 기관 편의성을 이유로 특정 스펙을 강요하면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초고속 광대역 통합망 구축’ 사업과 관련해 시스코 등 외산업체만 입찰 가능한 사전규격 RFP를 공지했다. 외산업체와 연동을 이유로 아예 다른 업체는 경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형태로 제시하면서 업계의 빈축을 샀다.

실제로 공지된 RFP에 따르면 ‘경기경찰청 종합정보망 네트워크 접속 장비는 경찰청 연동 라우터(C7604)와 완벽한 호환성을 유지하도록 제공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논란이 되는 것은 ‘C7604와 호환성’과 ‘동일 제조사 장비로 제안’ 부분이다. C7604는 시스코 제품 외에는 없다. 산업계는 각 회사 제품마다 고유 기능이 있어 다른 업체는 제안이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입찰을 붙이는 이유는 경쟁을 통해 좀 더 싼 가격에 좋은 품질의 제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것이다. 입찰이 수의 계약 형태로 특정 업체 밀어주기 형태로 간다면 입찰 경쟁의 취지는 퇴색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국산 네트워크 시장은 이미 외산이 주도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도 이를 감안해 상생실천 방안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국산 장비를 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공공기관이 장비 연동을 핑계로 예외를 인정해 달라면 정책 수립의 근본 취지는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주지하다시피 공공기관의 정보화 사업 ‘스펙 알박기’는 이미 오래된 관행이다. 지난해 4월에도 수도권 K지자체가 가상화 사업을 발주하면서 하이퍼바이저 등 특정 가상화 업체만 참여할 수 있도록 RFP를 공지해 물의를 빚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비정상의 정상화는 결코 먼 데 있지 않다. 합리적이지 못한 관행과 규제부터 제대로 뜯어 맞추는 것이 첫 걸음이다. 그것도 정부가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한다면 돌아올 것은 신뢰 추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