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세운상가를 한국 전자산업의 메카로

[기고]세운상가를 한국 전자산업의 메카로

청계천은 서울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를 흐르는 3670m 길이의 개천이다. 청계(淸溪)는 맑고 깨끗한 시내라는 뜻이다. 수표교·오간수교·광교·영미교·관수교가 전에는 있었으나 복개공사로 없어졌다. 광교에서 마장동까지의 복개사업으로 그 위에 삼일고가도로가 놓였다.

그 옆을 따라 형성된 청계천 상가는 196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의 경공업 근대화를 이끌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의료기기와 비금속, 페인트상가를 이루고 있는 을지로3가에서 시작해 기계·금속·전기·전자의 세운상가와 을지로4가 쪽의 공구·조명상가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광장시장과 방산시장, 동대문시장과 평화시장을 끼고 있는 서울 상업의 메카였다.

지금도 종로3가에서 창신동을 따라 3㎞를 걷다보면 어림잡아 3000여개에 달하는 작은 공장과 상점들을 만날 수 있다. “청계천에서 만들지 못하면 한국에서 못 만든다”는 말이 나왔던 시대의 흔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청계천 상가는 도심의 슬럼가로 전락했다. 청계천의 추락은 내외부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사회적 변화에 뒤떨어져 오프라인에만 의존했다. 쇼핑 편의성면에서 마트, 백화점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마구잡이 난개발로 생긴 40~50년 된 낡은 건물과 정비되지 않은 노후 골목들이 그대로 방치돼 고객이 발걸음을 멀리하게 했다. 여기에 2005년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차를 갖고 나오기 어려운 곳’이 되면서 접근성도 떨어졌다.

청계천 상가는 단순히 영세 상인이나 점포가 밀집돼 있는 지역이 아니다. 제조와 유통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이것이 도쿄의 아키아바라와 차별되는 이유다. 서울 도심의 공업 클러스터라는 점에서 반드시 살려야 한다.

공구·인쇄·귀금속 등 경공업은 청계천 상가에서 오랫동안 생산·도매·소매·산매·배송까지 동시에 이루어지는 원스톱 서비스를 해왔다. 그래서 물류비용이 0에 가깝다. 또 특수 주문형 귀금속이나 공구 등은 청계천에서만 만들 수 있다. 전자·기계·공구 산업은 공장과 상점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다. 이곳에서는 설계도면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간단히 만든다. 그래서 제품의 실물크기 모형이나 견본을 만들어야 하는 소상공인,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서는 아직도 청계천을 자주 찾는다.

얼마 전 서울시의 보존 결정으로 철거 위기를 넘긴 세운전자상가는 청계천의 랜드마크다.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라는 의의와 함께 1970~1980년대 한국 전자산업을 일으킨 메카기 때문이다. 현재도 다양한 전기·전자부품이 제작돼 판매되고 있으며 450여개 상점이 활발히 영업 중이다.

최근에는 한국 최초 우주인 출신인 고산 박사가 3D 프린터 제작업체를 이곳에서 창업하며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세운상가야말로 3D 프린터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입지”라며 “실리콘밸리에 세운상가가 있었더라면 벤처 회사들이 서로 앞다퉈 입주하려고 난리였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1960년대 1달러짜리 단순 보세가공으로 출발한 우리나라의 전자산업은 50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선두권에 올라섰다. 황무지 위에서 오늘의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과 전자업계의 원로들의 피나는 노력과 땀 덕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청계천과 세운전자상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2005년 새 물길이 뚫린 청계천은 월 평균 관광객 100만명이 찾는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청계천 상가의 접근성을 떨어뜨린 원인이 되었지만 이제는 관광과 연계한 명소로서 상권을 발전시키는 고민이 필요하다. 시설과 경영을 현대화해 청계천 상가에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 중국의 추격과 일본의 부활이라는 틈바구니에서 고민하는 우리 전자산업의 미래를 청계천에서 다시 찾자.

나경수 전자·정보인협회장 rhaks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