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자동차 시장은 연료만 놓고 보면 디젤차와 전기차의 한해가 될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수입차를 중심으로 전개된 디젤차 전성시대가 국산차 가세로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전기차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이 둘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아무래도 ‘연비’가 아닐까 싶다. 연비가 엇비슷할 때야 다른 요소가 관심사였겠지만, 기술력에 따라 연비에서 큰 차이가 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월 유류비×12’라는 수식을 통해 1년에 몇 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 금새 나온다. 그러나 연비가 다는 아니다. ‘주행감’이라는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밟는 맛’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디젤차와 전기차에 대한 선호도가 갈릴 수 있다. 이 점에서 디젤차가 유리한 것은 분명하다.
19일 강원도 홍천에서 한계령을 넘어 경포대로 이어지는 130㎞를 쉐보레 말리부 디젤을 타고 달렸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구불구불한 길과 곧은 길이 고루 있는 코스여서 ‘유러피언 디젤 중형 세단’을 표방하는 말리부 디젤의 힘과 주행성능을 시험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새로운 말리부의 외모에서 받은 특별한 느낌은 ‘든든하다’는 것이었다. 폴크스바겐 파사트보다 조금 짧고(전장 5㎜), 더 넓은(전폭 20㎜) 차체가 이런 느낌을 주는 듯 했다. 파사트를 언급한 것은 한국지엠 측이 말리부 디젤의 경쟁 상대로 이 차를 꼽았기 때문이다. 든든하다는 느낌은 곧 ‘안전해 보인다’는 느낌으로 연결됐다. 차가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배우 정우를 내세워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말리부 디젤의 새 광고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디자인에는 조금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밥 러츠 전 GM 부회장이 말한 것처럼 ‘콩알(예산 지출)을 세느라 화끈한 디자인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몹시 아쉬운 일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꼭 한 번 타보고 싶은 매력적인 디자인에도 공을 들였으면 한다.
든든해 보인다는 이미지는 쉽게 ‘우둔해 보인다’는 이미지와도 연결될 수 있다. 말리부 디젤은 파사트보다 80㎏가량 무겁다. 말리부 디젤이 도전해야 할 과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연비가 좋으면서도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으면 소비자 마음을 훔치기가 어렵다. 과연 해냈을까?
홍천에서 한계령으로 가는 길은 차가 많지 않아 시원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차 바깥에서는 덜덜거리는 디젤 특유의 엔진 소리가 들렸지만, 운전석에서는 소음도 진동도 거의 느끼기가 힘들었다. 한국지엠 측은 “다중 연료분사 시스템과 최적화된 분사제어를 통해 디젤 엔진 특유의 연소소음을 절제했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 설명대로 엔진 자체에서 나는 소음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차 안으로 전달하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 점에서는 오히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독일산 디젤차보다도 낫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밟는 맛’을 시험해봤다. 주변 차량 몇 대를 가볍게 추월하고 나니 어느새 시속 140~150㎞대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말리부 디젤에는 독일 오펠사(社)가 생산한 2리터짜리 4기통 터보 엔진이 탑재됐다. 이 엔진은 최고 출력 156마력, 최대 토크 35.8㎏·m의 힘을 낸다. 급가속 상황에선 최대 토크가 38.8㎏·m까지 치솟는 ‘오버부스트’ 기능이 더해져 추월이 쉽다고 한국지엠은 설명했다. 실제로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으면 엔진음이 갑작스레 커지면서 차가 튀어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아쉬운 점은 반응속도인데, 가속페달을 밟는 것과 실제 급가속이 이뤄지는 것 사이에 미세한 시간차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밟는 맛’이 중요한 사람들은 예민하게 느낄 만한 대목이다.
차는 어느새 구불구불 한계령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해발 900m라는 표지판이 보이면서 귀가 먹먹해졌다. 힘 하나는 확실했다. 말리부 디젤은 거칠고 험한 고봉준령 사이를 유유히 헤집고 올랐다. 언제 왔나 싶을 정도로 금새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수많은 급커브를 돌아오르면서 약간 밀린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한 코너링을 보여주었다. 차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빠르게 코너를 돌지만 않는다면 문제 없는 수준이다.
편의장치 중엔 사각지대 경고시스템이 눈에 띄었다. 큰 돈 들이지 않으면서도 운전자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기능 하나를 꼽으라면 이것을 꼽고 싶다. 새로운 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뉴 마이링크’를 탑재했는데, 지금까지 보았던 GM의 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가운데 단연 최고라는 생각을 했다. 터치감이 훌륭했고 내비게이션도 나무랄데 없었다.
주행 평균 연비는 한계령을 급가속으로 오를 때 12.0㎞/ℓ, 한계령을 내려가 평탄한 길을 달릴 때 14.3㎞/ℓ가 나왔다. 이 차의 복합연비가 13.3㎞/ℓ인 점을 감안하면 괜찮은 성적이다. 가격은 2000만원대 후반. 디젤차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가격과 크기, 연비를 고려하면 구매리스트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차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