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창조적 파괴’와 중소기업 법률지원

[ET단상]‘창조적 파괴’와 중소기업 법률지원

박근혜 정부가 출범 1주년을 맞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련, 추진에 나섰다. 이번 계획은 3개 대과제 중심에 ‘혁신경제’를 뒀다. 이를 근간으로 9대 핵심과제를 실행에 옮겨 2017년에 이른바 ‘474시대’, 즉 잠재성장률 4%대,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리나라는 1조2000억달러 수준의 세계 15위권 GDP와 세계 10위권의 무역량 수준의 경제규모에다 산업 고도화가 상당히 이루어져 있으며 비록 소수이지만 세계적인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 의욕에도 불구하고 이런 환경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3개년 계획이 얼마나 성공할지 선뜻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계획이 요구하는 외형적 성장과 수치 달성에 매달리다가 자칫 엉뚱한 부작용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접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은 우리나라 경제에 ‘경제혁신’이라는 목표 자체는 그 중요성을 폄하하기 어렵다.

‘혁신’(innovation)이란 개념은 원래 공산주의 이론에서 연원했다. 1848년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에서 처음 고안되고 마르크스가 1863년 자본론(Das Kapital)에서 발전시킨 자본축적과 붕괴의 연쇄과정을 통한 자본주의 붕괴이론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이를 오스트리아 출신의 천재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가 응용해 이른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와 ‘경제순환(business cycle)’의 경제이론으로 정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경제 발전의 핵심원리로 자타가 공인하는 개념이 공산주의 이론에서 비롯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혁신’은 ‘파괴’를 모태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경제적으로 이미 정착된 기존의 아이디어와 질서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기득권이 침탈당할 개연성이 크다. 이를 방어하고자 하는 기존의 강자와 도전자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모든 일이 혁신을 향한 동태적 과정(dynamism)으로 생산적으로 작용해 비로소 경제혁신이 가능하게 된다.

오늘날 경제혁신의 핵심요소로 공인된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고도로 발달한 오늘의 기술과 산업에서 완전한 무에서 창조되는 기술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도입해 혁신의 상징처럼 알려졌던 아이폰 디자인과 UX(사용자 경험)도 사실은 과거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던가. 새로운 지식재산권을 상업화해 시장에 신규진입하는 과정도 기존에 안정적 수익을 올리던 기업의 입장에서는 질서를 혼란시키는 파괴에 다름 아니다.

질서 파괴자로 이름 지워질 때 온갖 비난과 함께 밀어닥칠 것은 법적 분쟁이다. 특허를 비롯한 지식재산권 소송은 양면성을 갖는다. 정당한 권리자를 보호해 혁신의 유인을 제공하는 기능과 동시에 자격 없는 권리자를 걸러내고 새로운 혁신에 법적 보호를 부여하는 것이다. 지식재산권을 매개로 한 창조적 파괴의 동태적 발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법적 분쟁이 후생증진을 지향하는 선순환을 이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것을 가능케하는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다.

중소기업 내지 개인 발명가와 기득권자 간의 도전과 방어 과정에서 ‘무기대등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대기업은 대형로펌의 우수한 변호사로부터 비싼 자문을 받고 법적 대응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 반면 중소기업이나 개인들은 충분히 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아이디어나 권리를 갖더라도 전문가로부터 충분한 도움을 받고 소송까지 진행시킬 수 있는 비용이나 사업상 위험을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경제혁신의 선순환이 아니라 기득권자의 일방적 권리주장과 잠재적 혁신기업의 사업포기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대기업에 과도하게 경제력이 집중되어 시스템화·위험화 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시장구조에서 이러한 염려와 대책은 더욱 절실하다.

대책의 하나로 권하고 싶은 것은 중소기업이나 개인 발명가를 위한 법률지원 사업이다. 지난 2월 업무보고를 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등의 기술유용행위를 적극 시정하고 특허청은 작년 말에 제정한 아이디어 보호 가이드라인을 적극 집행하겠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 정부기관과 중소기업단체 등도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과 수준을 보면 현실의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방향 역시 전적으로 옳다고 하기 어렵다. 정부의 시혜적 규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시장에서의 수요를 정확히 반영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등 약자들이 원하고 사회적으로도 효율적인 것은 이들이 능력있는 법률가의 전문적 서비스를 받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따라서 높은 전문성을 가진 정부법무공단이나 대형로펌의 변호사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그 비용을 알선해주는 방법이 긴요하다. 로스쿨에서 배출되는 젊은 변호사들을 우수한 전문가로 대량 양성하여 접근성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면 가장 문제와 해결책을 잘 알고 있는 자신이 같이 노력하여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게 된다. 비용 역시 아이디어와 지식재산권 등을 담보로 조달하는 등 자신의 책임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정부가 기금조성 등을 통해 과감하게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성공보수를 높이는 방법으로 지원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장실패(market failure)의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는데 이 보다 적합한 영역도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할 곳과 그렇지 않을 곳을 잘 구별하여 전자의 경우라면 시장이 충분히 반응할 수 있을 정도로 집중 투자하길 기대한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hwang_lee@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