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광통신은 광섬유를 통해 레이저 빛을 쏘아 디지털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 방식을 말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주고받는 정보의 대부분이 광통신으로 전송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광통신은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통신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광섬유는 빛의 굴절률이 다른 두 부분의 유리로 구성되는데 빛이 통과하는 안쪽 유리를 코어라 하고 빛의 산란을 막아주는 밖의 유리를 클래드라 한다. 빛은 직진성이 강해서 증폭 없이도 수백 킬로미터를 나아갈 수 있다.
전송할 디지털 정보는 빛의 점멸로 전환되는데, 정보를 빛의 점멸로 전환시켜주는 장치를 송신기라 하고 이를 수신해 다시 디지털 정보로 전환하는 장치를 수신기라고 한다. 빛을 정보로 전환하는 데에는 강력하고 초당 수십만번의 점멸을 가능케 해주는 레이저 다이오드나 발광 다이오드가 사용된다.
빛을 통신에 활용한다는 생각은 오래 전의 일이다. 18세기 말 프랑스 샤프는 최초로 이런 시도를 한 과학기술자였다. 19세기 말 벨이 광전화기를 발명하였지만 전송 능력이 떨어지는 대기를 이용한 것이어서 자신의 또 다른 발명품인 유선 전환기에 밀려 실용화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1960년대 루비 등의 레이저 광통신 이론이 입증되고 1966년 규소를 원료로 하는 광섬유가 개발되면서 광통신의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그 이후 광통신은 데이터, 영상, 사운드 등 엄청난 양의 멀티미디어를 아주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통신 방식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디지털 시대를 규정하는 두 가지 물질적 기반이 있다면 하나는 저장의 기반인 하드 디스크이고 다른 하나는 전송의 기반인 광통신망이다. 생물학적 은유를 써서 표현하면, 전자는 우리의 기억을 저장하는 두뇌에, 후자는 이런 기억을 서로 전달하는 신경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맥루한은 미디어가 ‘인간의 확장’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기술사적으로 광통신이 200년의 역사를 가지지만, 실제로 광통신의 기원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봉수대에 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삼국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해 조선시대 초인 세종조에 기간통신망으로 구축되어 갑오경장이 있던 1895년경까지 활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봉화대라고도 불리는 봉수대는 전국 각지 높은 산이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설치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다섯 개의 봉수대 망이 기간망으로 구축되었고 이런 봉수대 기간망의 최종 도착지는 남산이었다. 이에 대응해 남산에는 동서남북으로 다섯 개의 봉수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북쪽을 향하고 있는 하나만 복원되어 있다.
봉수대가 디지털 광통신인 이유는 자명하다. 산 정상의 봉수는 각각 5개의 봉수대로 구성된다. 적의 침입과 같은 전황을 그 정도에 따라 5개 코드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메시지는 봉수대 5개 중 몇 개에 불이나 연기를 피울 것인가라는 온-오프 신호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순서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코드는 다섯 개에 불과하지만 현대적인 디지털 신호와 같이 ‘이진 코드’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렇게 표현된 불이나 연기라는 신호는 빛의 속도로 전송된다. 다른 산의 봉수에서 보내온 신호를 보고 연기를 피우는데, 즉 증폭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신호는 빛의 속도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놀라운 전송 능력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봉수대는 이진 코드를 근간으로 하는 표현의 정확성과 빛의 속도라는 전송 능력 덕분에 근대까지도 지금처럼 국가기간통신망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을 매개로 봉수대와 디지털 광통신은 긴 시간에 넘어 공명하고 있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