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려되는 `묻지마` 규제 철폐

지난 20일 장장 7시간에 걸쳐 이뤄진 청와대 규제개혁점검회의가 끝난 후 정부 부처가 발빠르게 움직인다. 예정에 없던 부처 직원 대상 규제 워크숍을 개최해 규제 철폐를 다짐하고 없애야할 규제 리스트를 작성하는 등 관가가 분주하다. 예상했던 대로다. 규제개혁점검회의가 생중계로 방영된 탓에 부처 장관의 부담감은 더할 수 없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시점에서 염려되는 것은 ‘묻지마’식 규제철폐다. 규제 완화는 필요하지만 철저한 검토없이 대세에 밀려 규제를 마구 푸는 것은 되레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경제를 활성화한다거나 업계가 원한다고 해서 규제를 대폭 완화한 후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 수많은 과거 경험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철폐해야할 규제가 있고 강화해야할 규제가 있다고 했다. 부처마다 규제 완화 강도가 달라야 하는 이유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경쟁촉진, 소비자 주권 확립, 중소기업의 경쟁기반 확보 및 경제력 집중 억제 등 크게 네가지 업무를 수행한다. 공정위의 규제는 이같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룰(Rule)이라 할 수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룰이 자주 바뀌면 심판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다.

자칫 공정위의 대폭적인 규제완화는 대기업의 무한 확장으로 중소기업 생존기반을 무너뜨리고 소비자 주권 침해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가뜩이나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 대선 공약이 취임후 실종됐다는 비판을 받는다. 경제민주화가 대기업의 투자를 얼어붙게 만들고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된다는 우려 때문에 경제민주화란 말은 자취를 감췄다.

공정위는 이명박정부 시절 ‘비즈니스프랜들리’라는 국정기조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사업 확장을 가로막는 공정위가 눈엣가시나 다름없다. 그래도 공정위는 ‘시장 경제 파수꾼’이자 ‘경제검찰’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것이 공정위 숙명이다.

이 점에서 공정위가 반드시 필요한 규범을 유지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다행이다. 어떤 규범이 필요한 것인지 더 논의를 거쳐야 하겠지만 일단 합의하면 공정위는 어떤 공세에도 흔들리지 않는 심판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