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자면서 고급두뇌산업 `이중규제` 하는 정부

정부가 고급두뇌 산업으로 육성 방침을 밝힌 엔지니어링산업에 이중 규제를 가할 예정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대통령이 규제 혁파를 선언했지만 정부 한편에서는 유망 산업에 중복 규제를 적용하는 엇박자가 일어나고 있다.

25일 관계 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기존 엔지니어링사업자의 추가 등록 등을 담은 ‘건설기술진흥법(이하 건진법)’이 오는 5월 23일 시행된다. 건진법은 국내 건설기술 경쟁력과 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건설기술관리법’을 규제 중심에서 진흥·지원 중심으로 전환한 법이다.

건진법의 취지는 건설기술 산업 진흥이지만 기존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이하 엔산법)’과 사업자 등록 규정이 통일되지 않아 오히려 업계에 이중 부담을 안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건진법이 시행되면 엔지니어링사업자들은 두 부처가 담당하는 두 가지 법에 맞춰 사업자 신고·등록을 따로 해야 한다.

종전 엔지니어링사업자는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법률인 엔산법에 따라 일정 기준을 갖추고 신고하면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 앞으로 국토교통부 소관 건진법이 시행되면 사업자가 엔지니어링업의 하위 영역인 건설공사 계획·조사·설계에 해당되는 기술 용역을 수행하려면 별도로 시·도지사에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한다. 신규로 건설공사 계획·조사·설계업을 시작하려는 사업자도 일단 엔산법에 따라 신고한 후 다시 건진법에 의거해 등록해야 한다.

엔산법과 건진법의 사업자 요건도 다르다. 엔산법은 기술인력 5명 이상이지만 건진법은 7명 이상으로 강화됐다.

더 큰 문제는 이중규제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링 기술은 건설은 물론이고 기계·전기전자·환경·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된다. 건진법을 계기로 각 부처가 기술 분야별로 별도의 등록제도를 시행하면 이중을 넘어 삼중, 사중의 규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업계는 정부가 엔지니어링을 고급두뇌 산업으로 육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규제를 강화하는 것에 우려를 표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7월 ‘고급두뇌 역량 강화를 통한 산업 고도화 전략’을 발표하면서 엔지니어링을 디자인·임베디드SW·시스템반도체와 함께 주요 고급두뇌 산업 중 하나로 꼽았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엔지니어링 산업이 경쟁력을 높여 글로벌화를 꾀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중 규제로 인해 경영상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와 국토부는 개선안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미 법률로 공포된 것이어서 하위 시행령만으로 보완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두 부처 관계자는 “법률 자체를 개정해야 하는 문제여서 지금 당장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향후 법 시행 추이를 살피며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엔지니어링…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에 따르면 과학기술 지식을 응용해 기획·설계·분석·시험·감리·검사·자문·유지보수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엔지니어링산업은 이들 활동으로 경제 또는 사회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