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산하 협회·단체 난립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몇 해 전 건설 붐을 타고 건설 협회·단체가 잇따라 발족하는가 하면, 캠핑 열풍에 지자체가 앞장선 협회·단체도 등장했다. 지금부터 딱 10년 전 무선인터넷이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주목받으면서 관련 협회·단체가 정보통신부 산한 사단법인으로 줄줄이 등록하기도 했다.
지난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규제개혁 끝장토론’ 시청자들은 자동차튜닝협회라는 단체를 새롭게 접했다. 튜닝협회는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 인가를 받아 협회로 발족했다. 같은 시기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협회로 자동차튜닝산업협회가 인가됐다. ‘산업’이라는 단어가 있는지, 없는지의 차이일 뿐 정관에 소개된 사업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관련 업계는 두 협회가 부처를 달리해 등록돼 있어 업계의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토로한다. 튜닝 관련 규제완화를 본격화하는 단계인데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게 되면 시장 자체가 쪼개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 같은 상황은 자동차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주요 정부부처 산하 협회·단체는 3000개가 넘는다. 특히 산업진흥을 맡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협회·단체는 930개를 웃돈다. 이 가운데 에너지 관련 협회·단체가 절반 이상이다. 신재생에너지, 정유·가스, 자원, 전력 분야에만 각각 10여개다. 협회명은 다르지만 다루는 사업은 거의 비슷하다. 협회 임직원들은 ‘유관기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키기 위한 행보에 조심 또 조심이다.
문제는 협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산업계다.
“비슷한 성격의 협회·단체가 요즘 너무 많아요. 참여하는 업체들도 거의 겹치고 솔직히 회비 내고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에너지업계 한 CEO의 하소연이다. 협회에 가입했지만 비슷한 성격의 또 다른 협회에서 권유하면 어쩔 수 없이 수백만원을 내고 가입할 수밖에 없다. 전시회 참여도 속앓이다. 제품과 브랜드 홍보를 위해 전시회 참여는 필수지만 비슷한 전시회가 많아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전시회 자체가 정부의 생색내기임을 알면서도 참여하지 않으면 ‘미운털’이 박힐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크든 작든 맞지도 않는 옷을 입어야 한다. 협회 난립이 산업계에 또 다른 ‘준조세’로 적용될 수 있는 이유다.
협회·단체는 정부와 업체 간 가교역할을 함으로써 산업 활성화에 기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산업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앞장서 종합시스템을 만들자는 취지는 백번 좋다. 하지만 산업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하는 협회·단체가 콘퍼런스를 한 번도 열지 못했다면 회원사를 대변할 자격은 없다.
정부의 지원과제를 얻기 위해 설립된 협회라면 더더욱 그렇다. 정부가 매의 눈으로 이를 살펴봐야 한다. 비슷한 성격의 단체가 여럿이면 기업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 협회·단체가 활성화돼 산업의 고른 발전과 전문인력 양성에 나서는 것은 맞지만 얼마만큼 지속성 있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결집력 약화, 대표성이 상실됐다면 스스로 거취를 취하는 것이 맞다.
과거 산업자원부의 RFID산업화협의회와 정보통신부 USN전략협의회가 힘겨루기를 하면서 관련업계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까 걱정했던 상황을 기억해야 한다. 협회·단체 난립은 기업들에 부담일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손톱 밑 가시’다.
김동석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