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프로브카드 전문기업 파이컴(현 솔브레인이엔지)을 창업해 코스닥 상장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이억기 회장이 발광다이오드(LED) 업계로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이 회장이 제 2의 인생을 펼칠 LED 분야는 최근 가장 유망한 신성장산업 분야로 꼽힌다. 이 회장은 LED 분야에서도 핵심 부품인 ‘콘덴서’ 전문 개발 업체 ‘파이컨’을 만들었다. 지난 5년간 핵심 기술 개발에 전념했고, 올해 상반기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 기존 전해콘덴서를 코일형 기계식으로 대체한 제품이다.

종전에 없던 신개념 LED 콘덴서를 시장에 알리는 데 여념이 없는 이 회장. 바쁜 와중에도 책을 항상 가까이 한다는 그에게 최근 재밌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제 인생에서 가장 재밌었던 책은 ‘간양록’이었어요”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간양록은 1980년대 MBC 드라마로 제작된 적도 있고, 가수 조용필의 애절한 노래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자식뻘인 기자에게 ‘간양록’의 저자부터 차근차근 설명에 나섰다. 간양록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잡혀갔던 유학자 ‘강항’이 쓴 책이다. 일본 포로로 끌려가 온갖 수모 속에 고향을 생각하며 쓴 일기형식의 기록이다. 당시 일본의 정치·군사·문화·사회 등 광범위한 현상을 자세히 기록한 것으로, 임진왜란기 조선과 일본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지만 일본에서는 ‘주자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책의 원제는 ‘죄인이 타는 수레’를 가리키는 ‘건차록’이었으나 이후 그의 제자들이 간양록으로 바꿨다. ‘간양’은 강항의 자작시 제목으로, 스스로를 외로운 양치기에 비유했다.
이 회장은 “강항은 ‘적에게 잡히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오히려 적에게 구출돼 포로로 끌려갔고, 여러 번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혔다”며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이후에 겪게 되는 여러 과정에서 견지되는 그의 국가관과 민족관에 가슴이 먹먹해 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런 환란 중에 겪은 수난과 고독, 나라에 대한 염려가 담긴 자작시는 정말 구구절절하다”며 “특히나 요즘 일본의 역사 왜곡과 같은 문제를 볼 때면 우리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분명하게 제시해 준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LED 업계가 세계 정상 자리를 놓고 일본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간양록을 통해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아가 ‘극일전략’을 세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양서 한 권은 보약이나 다름없는 효과를 발휘한다”며 “정갈스럽지 못한 요즘, 간양록과 같은 책을 접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