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신경영 2.0’에 시동을 걸었지만, 삼성전자 일부 사업부가 혁신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곳곳에서 위기 경고등이 켜졌다. 시장 환경이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일찌감치 예고됐음에도 혁신보다는 관행에 안주하면서 1분기 실적은 증권 업계 예상치보다 하회하는 ‘어닝쇼크’가 현실화될 조짐이다.

문제는 이건희 회장이 제시한 비전이 제대로 현장에서 구현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디지털 삼성, 기술의 삼성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혁신에 혁신을 주창하며 오늘의 글로벌기업 삼성을 키워낸 인물이다. 세계 휴대폰 시장을 10여년간 주도하며 부동의 1등 기업으로 군림해온 노키아마저 저만치 따돌리며 삼성전자를 세계 정상의 기업 반열에 올린 것이다. 세계 전자산업을 이끌며 ‘지지 않는 태양’으로까지 칭송받았던 일본 대표기업 소니까지 제친 것은 우리 기업사의 일대 사건으로까지 회자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특히 독일 총리조차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떻게 삼성전자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느냐’고 물을 정도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기업이 됐다. 국내에서도 대학생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으로 꼽힐 정도다.
그런데 그런 삼성전자 내부에 이건희 회장이 비전을 제시하면 경영진이 일사불란하게 실천하며 한계를 돌파하던 특유의 근성과 시스템경영이 일부 사업부에서 사라졌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더구나 최근 들어 언론의 보도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현장의 상황들이 윗선으로 제대로 보고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보고체계에 대한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시스템경영의 이상징후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1월부터 장기간 해외에서 경영구상 중인 이건희 회장이 귀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실 안주는 곧 패망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해온 그가 이번에는 어떤 경영 화두로 조직을 일신할지 재계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건희 회장은 4년 전 경영복귀 당시 “지금이 진짜 위기다. 앞으로 10년 내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나가자”며 ‘속도경영’을 화두로 제시한 바 있다.
이건희 회장이 이후 서울 서초사옥으로 직접 출근해 위기경영을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삼성전자는 글로벌 매출이 4년 전인 2010년 290조원에서 지난해 380조원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고 선언한 이 회장의 신경영이 지난 4년간 집약적으로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신경영 20주년을 반환점으로 연초 ‘마하경영’으로 대변되는 신경영 2.0 버전을 제시했다. 이 회장은 2014년 신년사에서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하려면 기존 엔진과 소재, 부품을 모두 바꿔야하는 것처럼 삼성이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비전이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2.0’이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일선 사업부에서 구체적인 혁신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여전히 ‘마른수건 짜기식’ 비용절감이라는 낡은 관행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과 무관하지 않다.
조만간 발표될 삼성전자의 1분기 실적은 위기를 가시적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영업이익이 당초 증권 업계 추정치 평균인 8조4798억원에 훨씬 못미치는 8조원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0% 가까이 급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 4분기에는 아홉 분기 만에 처음으로 전년 동기보다 5.7%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데 이어 감소폭이 더 커지면 ‘삼성전자 위기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증권사들은 이를 반영하듯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줄줄이 낮췄다. NH농협증권이 지난 28일 기존 180만원에서 170만원으로 낮췄고, 하이투자증권(180만→170만원), 한화투자증권(165만→160만원), HMC투자증권(170만→150만원) 등도 잇따라 하향조정했다.
위기의 진원지는 내부라는 지적이 많다. 일부 사업부가 ‘퍼스트 무버’를 주창하는 이건희 회장의 혁신경영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이란 기업은 정체되면 곧바로 위기를 맞게 된다. IT기업의 특성이다. 노키아와 HTC가 대표적이다. 그런 삼성전자가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1분기 수익성에서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시장상황에 직면했다. 실적악화의 진원지인 스마트폰 판매 저조는 다른 주력사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수요까지 연쇄적으로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삼성전자로서는 치명적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애플과 특허소송에서 패배했다. 한국에서는 높은 시장점유율로 독과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실적과 무관한 경영 리스크도 즐비했다.
이 때문에 이건희 회장이 귀국하면서 다시 꺼내들 위기경영 화두가 어느 부서로 향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삼성전자 수익의 70%를 창출한 IM담당이 다시 혁신하지 않으면, 노키아의 몰락처럼 삼성전자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건은 이건희 회장의 창조적 혁신요구를 경영 일선에서 얼마나 구현하느냐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삼성전자 일본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변화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