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은 저작물에 대한 독점적·배타적 권리다.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며 타인의 저작권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공익을 목적으로 국가 예산을 투입해 만든 ‘공공저작물’은 성격이 다르다. 제작 목적과 과정이 공공성을 띠는만큼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공공저작물 이용은 제한적이었다. 일부를 제외하면 공공저작물도 보호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업무상 번거로움과 저작권 침해 우려로 자유 이용 가능한 공공저작물마저 활용이 활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저작권법 개정으로 오는 7월부터 이용 범위는 대폭 넓어지게 됐다.
◇7월부터 누구나, 허락 없이
작년 12월 저작권법 일부법률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작성한 업무상 저작물은 허락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가·지자체가 업무상 작성한 저작물은 공익 목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제작된만큼, 저작권 보호를 배제하고 납세자인 국민의 자유로운 이용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종전에는 헌법·법률·조약·명령·조례 및 규칙, 국가나 지자체의 고시·공고·훈령 및 법원의 판결·결정·명령 등만 저작권 보호 대상에서 제외됐다. 연구보고서 등도 국민이 사용하려면 해당 기관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7월부터는 이런 번거로움이 없어진다. 국가·지자체가 저작권 전부를 보유한 저작물은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정보센터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가와 지자체 등이 보유한 공공저작물은 총 764만개에 달한다. 연구보고서는 물론이고 이미지, 영상물 등 각종 형태의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공공저작물을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은 공공누리 홈페이지(kogl.or.kr)를 방문하는 것이다. 문화부는 공공저작물 자유이용 허락 라이선스인 공공누리를 개발, 보급 중이다.
자유이용 허락 저작물임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 활용을 늘린다는 목표다. 공공누리 표시가 있는 공공저작물은 네 가지 조건 유형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출처만 표시하면 제한 없이 상업적 이용도 가능한 제1 유형부터 상업적 이용과 변형은 금지되는 제4 유형까지 구분됐다.
◇선진국과 비교해도 ‘진일보’
저작권법 개정으로 이용 가능해진 공공저작물 범위는 선진국과 비교해도 넓은 수준이라는 게 문화부 설명이다.
미국은 1976년 저작권법 개정으로 ‘연방정부가 작성한 미국 정부 저작물’에 대한 보호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 저작물은 정부 공무원이나 근로자가 직무의 일부로 작성한 저작물을 의미한다. 하지만 양도·유증 등으로 저작권이 미국 정부로 이전된 경우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개정 저작권법과 차이가 있다.
독일은 저작권법 제5조에서 ‘법률, 명령, 규칙, 고시와 재판 및 공적으로 작성된 판결요지 등은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또 ‘공공 이익을 위해 일반 공중에게 주지시키기 위해 공표된 여타 공공저작물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저작권 보호를 배제한다’고 정했다. 하지만 이용자가 저작물을 임의로 변경하는 것을 금지하고 출처 표시 의무를 규정했다.
일본은 인용의 한 형태로 공공저작물 저작권 제한 규정을 마련했다. ‘국가나 지방공공단체의 기관, 독립행정법인 또는 지방독립행정법인이 일반에게 주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작성하고, 해당 저작명의하에 공표하는 홍보자료, 조사통계자료, 보고서, 기타 유사한 저작물은 설명의 재료로서 신문, 잡지, 기타 간행물에 전재(옮겨 실음)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같이 ‘저작재산권 제한 방식’을 적용했다. 하지만 공공저작물 이용을 전제로 한정하고, 이용시 출처를 명시하도록 규정했으며 대상 범위가 좁고 이용 형태가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밖에 영국, 호주 등은 아예 공공저작물 자유이용 관련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대응·인식 부족 문제 해결해야
문제는 공공저작물 공급처인 공공기관의 대응과 수요처인 국민의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특히 오래 전 제작된 공공저작물은 소유 관계를 명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 공공기관의 적극 대응이 필요하지만 전문 인력과 예산, 관심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다.
한국문화정보센터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공공저작물을 별도 관리하는 시스템을 보유한 기관은 89개 조사기관 중 23.6%(21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저작물 관리 담당자가 지정된 기관은 52.8%(47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관리 인력은 1~2명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5명 이상인 기관은 극히 드물다. 응답자 77.5%가 지금 인력으로는 공공저작물 관리에 부담이 있으며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저작물을 확보하고 있지만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기관은 16.4%(10개)에 달했다. 저작물 관리를 위한 부서간 협조가 잘 이뤄진다는 비율은 56.2%(50개)로, 부정적인 의견은 43.8%에 달했다. 외부 용역계약에 대응해 저작권 양도 관련 계약서·계약시스템을 갖춘 기관은 36%(32개)에 불과했다.
수요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공저작물이라는 용어를 들어봤거나 알고 있는 비율은 57.4%에 불과했다. 공공저작물을 실제 업무·학업에 활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32.7%로, 한달에 평균 2.9건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저작물 관리체계에 만족하는 사람은 28.8%에 불과했다. 공공누리를 ‘잘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2.5%인 반면 ‘전혀 모른다’는 비율은 53.8%에 달했다. 공공저작물 활용 증진을 위한 과제로는 홍보 활성화, 질적 수준과 접근 용이성 제고를 꼽았다.
문화부 관계자는 “공공저작물이 체계적으로 공개되고 국민들이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각 기관의 의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공저작물 관리인력 현황(출처:한국문화정보센터)
공공누리 미 부착 이유(출처:한국문화정보센터)
많이 이용한 공공저작물 유형(출처:한국문화정보센터)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