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HD 방송 시대 열리지만 장비 국산화는 `걸음마`…투자비 해외로 빠져나갈 판

초고화질(UHD) 방송 시대가 목전으로 다가왔지만 UHD 방송장비 국산화는 사실상 걸음마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UHD 방송 상용화가 진전될수록 거액의 장비 투자비가 해외로 빠져나갈 것으로 우려된다.

방송업계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른 UHD 시장 주도권을 일본, 미국, 유럽 등 해외 업체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2일 방송업계에 따르면 KBS는 캐논, 소니, NEC 등 해외 업체가 무상 제공한 UHD 방송장비로 오는 5일 울산에서 벌어지는 프로농구(KBL) 결승전을 세계 최초 실시간 UHD 실험방송으로 중계할 예정이다. 이날 사용되는 국산 장비는 티브이로직 4K 제작용 모니터 1대, 컴픽스 컴퓨터 그래픽 장비가 전부다.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등 UHD 방송을 준비하는 유료방송 업계도 상황은 같다. UHD 방송을 구현하기 위해 엔코더, 디코더 등은 물론이고 카메라, 편집기 등 부가 장비가 다수 필요하지만 국내 기술은 이제 막 고효율 비디오 코딩(HEVC) 엔코더를 개발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케이블TV 업계 관계자는 “UHD 방송은 왜곡현상 때문에 초당 60프레임(60p)을 구현하는 엔코더가 필요하지만 국산 제품이 전무한 상황”이라며 “국산 소프트웨어(SW) 엔코더 등도 등장하고 있지만 실제 UHD 방송에 활용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위성방송 관계자는 “HD 시장에서는 일부 국산 업체 제품이 범용화 됐지만 UHD 시장에서는 검증되지 않아 사용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방송장비 업계는 해외 업체에 뒤질 수밖에 없는 이유로 열악한 국내 시장 환경을 꼽는다. 중소기업이 많은 업태 특성 상 대규모 투자자금 확보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신제품 개발에 성공해도 방송사업자에 공급할 수 있는 유통 채널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엔코더 업계 관계자는 “오랜 기간 해외 장비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국내 방송시장에서 국산 장비업체가 시장에 진입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며 “방송사업자가 이미 품질이 검증된 해외 업체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기술 개발’에 중점을 둔 정부 과제가 방송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유통’까지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산 장비 의무사용 비율 등을 신설해 국내 방송장비 업계가 UHD, 3차원(D) 등 신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다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 방송장비업체 대표는 “수십억원을 들여 개발한 신기술이 유통되지 않으면 모든 손해를 떠안기 때문에 정부 과제나 신기술 개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관련 업계가 협력해 방송장비 산업 구조를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