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달리며 내일을 짓는다’
중국, 프랑스와 한국. 눈을 뜨면 다른 나라다.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는 스스로를 ‘경주마’에 비유하며 레이스 하듯 세계를 달린다. 하루걸러 다른 나라에서 아침을 맞는 그의 일상은 국경의 틀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여행자의 삶을 닮았다. 건축가로 걸어온 긴 일생의 여정과 생각을 담은 ‘나, 건축가 구마겐고’는 첫 자서전이자 세상을 개척하는 이에게 던지는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다.
“건축가는 상대를 내려다보며 일을 고르는 엘리트가 아니라 매번 레이스에 나서야 하는 경주마”라 묘사한 그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달린다”고 적고 있다.
첫 작품부터 논란을 일으키며 반기를 든 구마 겐고의 건축물은 예술이자 도전으로 일본 건축 역사의 획을 그었다. 단단하고 깨끗한 건축으로 대변되는 현대의 건축 철학에 반기를 든 그는 ‘자연스러운 건축’ ‘연결하는 건축’ ‘약한 건축’ 등 콘셉트로 독자적 길을 걸어왔다.
산 속에 감춰진 ‘기로잔전망대’, 유리와 철근으로만 지어진 ‘워터·글래스’, 지역 재료를 이용해 공사비를 5분의 1로 줄인 ‘모리부타이·도요마마치전통예능전승관’, 전통적인 가부키극장의 외형을 따른 극장과 오피스빌딩을 결합한 ‘제5대 가부키극장’ 등이 대표물이다. ‘외관이 없는 건축물’이라 불리는 아오레나가오카는 20세기 공공건축물에 이의를 제기한 역작으로 평가 받는다.
비판과 맞서 싸웠던 그는 “새로운 건축에 도전해야만 했다. 용기가 필요하고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며 눈앞의 비판에 흔들리지 않고 멀리 보는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며 철학 그대로를 고집하고, 세계적 건축가로 성장한다.
매일 새로운 세상을 접하지만 여전히 과거에 머무른 많은 이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구마 겐고의 눈은 미래를 향했다. 갇혀 있는 많은 기업가와 창업가, 디자이너에 울림을 주는 이유다. ‘강했던 시절의 일본이 아닌 지금의 약한 일본을 위한 약한 건축물을 만들자’고 각오하는 그에게 건축은 세상을 보고 표현하고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자의 본질을 그린다.
각 나라를 돌아보며 그가 느낀 경제와 문화의 단면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통찰의 힘을 엿보게 해준다. 이익을 중시하는 중국에서 비정함을 느끼면서도 강해지는 스스로의 기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미국 도시개발을 움직이는 유대인의 방법론과 교역 감각에서 국경을 넘어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직감한다.
그 속의 한국은 급속히 발전한 힘으로 외부에 진출하려는 의욕이 강하다고 묘사한다. 일본 기업에 진정한 위협이 될뿐더러 일본이 누려온 안주함을 버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란 위기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 능력을 가지고 중국에 진출하지 못하는 일본 기업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한국 기업을 비교하며 21세기 일본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다.
병과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구마 겐고는 자유롭지 못하게 된 오른손을 두고 정신적 발견에 이르기도 한다.
‘일본에서 어떻게 세계적 건축가가 이렇게 많이 나올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일본이 약해져서 반짝이고 예리한 면이 후퇴하는 바람에 새롭게 파내려갈 가치가 있는 장소가 발견된 것”이라고 일본 건축산업의 발전 이유를 설명한다.
구마 겐고 지음. 민경욱 옮김. 안그라픽스 펴냄. 2만원.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