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甲甲한` 지상파에 신음하는 유료방송업계

[기자수첩]`甲甲한` 지상파에 신음하는 유료방송업계

“어느 시장에서나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쪽이 갑인데 방송 바닥은 그게 아예 뒤집혔어요. 슈퍼갑이라고 들어보셨죠. 방송 시장에서는 지상파가 슈퍼갑이예요. 계약서를 내밀고 서명 하라고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합의지만 실제로는 일방적 통보예요.”

최근 지상파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은 유료방송사업자들의 하소연이다.

지상파 N스크린 서비스 푹(pooq)TV는 IPTV 3사 모바일 TV에 실시간 채널을 제공하는 대가로 250억원에 달하는 콘텐츠 사용료를 받기로 했다. IPTV 사업자는 지상파에 유선IPTV 가입자당 재전송료(CPS)에 거액의 모바일TV 콘텐츠 사용료까지 부담하게 됐다.

유료방송업계는 공정하지 않은 계약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IPTV 관계자에게 불공정한 조건인 것을 알면서도 계약을 맺은 이유를 물었다. 지상파의 콘텐츠 파워에 눌려 어쩔 수 없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방송 콘텐츠 가운데 80%는 지상파가 차지하고 있다. 유료방송사업자는 지상파 콘텐츠를 방송 플랫폼에서 넣지 않으면 경쟁사에 뒤쳐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상파는 (계약)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콘텐츠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지상파가 제시한 계약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지상파가 지닌 보도 기능도 유료방송사업자를 압박하는 요인이다. 일반 시청자를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진행해야 하는 유료방송사업자는 언론 보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상파가 자사 기자를 통해 부정적 기사를 빌미로 압박을 가해 시청자가 거의 없는 지방 방송 채널이나 시청률이 극도로 낮은 주문형비디오를 받아들인 적도 있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방송업계는 초고화질(UHD) 시대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인터넷 방송 열풍으로 전통적인 방송시장 질서도 붕괴될 조짐이다. 지상파와 유료방송사업자가 차세대 미디어 산업을 선도하고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한 쪽이 힘의 논리로 일방적인 불이익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협력은 불가능하다. 보다 미래지향적인 지상파의 자세가 필요하다.

정보방송과학부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