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카카오톡이나 라인과 같은 인스턴트 메신저가 집단 커뮤니케이션 매체로 사용되고 있지만 전통적인 가상공동체는 여전히 인터넷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같은 SNS는 우리가 경험하고 참여하는 가상공동체의 현대적 모습이다.
가상공동체는 전자게시판, 카페, 메일링 리스트, 온라인 게임, SNS 등 인터넷 서비스를 매개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정보, 의견, 감정을 교환하고 상호작용하는 공간을 지칭한다.
가상공동체 주창자의 대부라 할 수 있는 하워드 라인골드는 일찍이 1993년 전화선으로 연결된 PC 통신망을 통해 이런 형태의 가상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출발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터넷의 전신인 ARPANET이 1969년 출범하고 얼마 되지 않아 메일링 리스트를 기반으로 공상과학소설을 좋아하는 과학기술자의 모임인 ‘SF-LOVERS’와 같은 가상공동체가 구성돼 꽤 오랫동안 운영되기도 했다.
라인골드에 따르면 가상공동체는 촌락 공동체나 직업 공동체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야기된 공동체에 대한 갈망이 불러일으킨 반응이라고 진단한다. 즉 인간은 원래 사회적 존재인데 산업화에 따라 파편화되고 원자화되는 외로워진 상황에서 대인관계의 욕망을 가상적인 수단인 통신망을 매개로 충족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가상공동체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가상공동체가 전통적인 공동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라인골드는 가상공동체를 ‘휴머니즘과 테크놀로지의 놀라운 만남’이라고까지 평가한다.
가상공동체는 PC통신망이나 인터넷망과 같은 전자적인 네트워크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방송 매체는 물론이고 문자 매체와 같이 오래된 매체를 매개로 해서도 형성됐다. 1662년 로버트 보일은 자신이 발견한 열역학 법칙인 보일의 법칙을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실험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보일은 연구의 타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수행한 실험의 절차와 결과를 그 논문에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보일의 논문은 두 가지 점에서 현대적인 가상공동체의 속성을 보여준다. 하나는 일종의 ‘가상 참관’을 가능케 해주었다는 것이다. 즉 물리적으로 같이 있지는 않지만, 그 논문을 통해 실험 절차를 읽는 다른 과학자들은 실제로 실험을 관찰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가상공동체의 주요한 경험인 원격현전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그 논문을 매개로 연구 공동체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보일은 실제로 이를 ‘같은 생각을 하는 신사들의 공동체’라 불렀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란 현대적인 의미로 공통의 정서와 관심사를 의미한다. 전문적인 영역에서 형성된 가상공동체는 오늘날 무수히 많다.
보일 이후에도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스타트렉이라는 TV 시리즈물, 스타워즈와 같은 영화 등을 매개로 수많은 가상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렇듯 가상공동체는 인터넷과 같은 전자적인 매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가상공동체를 매개하는 테크놀로지는 달라졌지만 가상의 공동체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듯 긴 시간을 이어지며 공명하고 있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