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한국전력공사가 ‘ESS(에너지저장장치) 종합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올해부터 2017년까지 약 6500억원을 투입해 500㎿급 대규모 주파수조정(FR)용 ESS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ESS 시장을 손꼽아 기다리던 에너지업계에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FR용 ESS는 순간적 수요 변동 등에 따른 주파수 변동을 막기 위해 운전 중인 발전기 출력 조절 주파수를 조정해 공급 능력을 향상시키는 일종의 발전 부가사업이다. 지금까지는 전력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류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발전량의 약 5%를 석탄과 LNG 등 고원가 발전기를 가동시켜 공급 능력을 조절해 왔다.
연간 보충해야 하는 전력은 1.1GW로 원자력발전소 1기와 맞먹는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6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ESS로 전환하면 초기 투자비용은 많이 들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성이 뛰어나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을 중심으로 이미 연간 수백 ㎿ 단위의 민간 시장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엄청난 잠재적 가치가 있지만 이 사업을 두고 한전과 한국전력거래소 등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국내 전력 독점 판매 사업자인 한전이 발전 영역까지 진출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전이 전력거래소에 지불해오던 FR 정산금을 한전이 직접 사업자로 참여하면서 전력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해당 수익을 독식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이에 한전은 전력거래소를 포함해 중소기업과 함께 시장을 만들면서 안정적인 국가 전력 수급에도 기여하겠다는 의도다. 여기에 우리나라 이차전지·ICT 등 관련 산업까지 육성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경제적 효과를 내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전력공사업법, 전기사업법 등 문구만 따져 바람직한 사업영역이니, 아니니 하는 것은 올바른 모습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특히 대형 ESS 해외시장은 이미 차세대 에너지사업의 중심축으로 기존 전력 발전 분야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와 독립형 전력망으로 크게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 주도의 과제나 실증단계에 머물러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ESS사업 투자가 이뤄지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사업 주체가 누구이든 ESS 시장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다.
ESS는 크게 전력변환장치(PCS)와 에너지 저장매체인 이차전지로 구성된다. 배터리는 이미 삼성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 코캄 등 우리 기업의 기술력과 시장 점유율은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반면에 PCS 분야는 해외 기업과 비교하면 아직 미흡하다. 실제 해외는 ABB나 지멘스 등 선두 기업 중심으로 이미 단위 용량 2㎿급이 보편화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실증 수준이다. 기술 격차가 5년 이상 벌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술 격차는 우리 기업의 능력부족이 아니라 시장 부재가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FR용 ESS사업은 우리 관련 업체의 기술 개발과 시장 경쟁력을 쌓는 데 큰 기반이 될 것이다. 특히 우리 중소기업에도 새로운 시장 창출 기회를 제공한다. ESS는 신재생에너지와 국가 전력망, 스마트그리드 핵심인 만큼 단품이 아닌 ICT 융합산업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사업 주체를 명확히 하는 조율도 필요하지만 한국 ESS 산업의 활성화와 글로벌 시장 진출 계기를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중소기업을 위한 배려와 강소기업 육성의 기회로 삼아주기 바란다.
이태식 이엔테크놀로지 대표 taylee@entech.b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