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사업 다각화로 네트워크 업계 고통 가중

대형 통신사가 통신 서비스 외 영역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콘텐츠 딜리버리 네트워크(CDN)와 네트워크통합(NI) 등 전문 서비스 업체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불공정거래는 아니지만 기존 구축 망과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적극적으로 고객 유치에 나서기 때문에 수익성 악화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9일 네트워크 업계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부터 CDN 사업을 시작한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와 CD네트웍스, 아카마이, GS네오텍, 효성ITX 등 기존 사업자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CDN은 인터넷 망과 분산 서버로 대용량 콘텐츠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전달해주는 서비스다.

전문 사업자는 별도 망 없어 통신사 망을 임대한 후 CDN 솔루션을 설치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면에 통신사는 자체 망이 있기 때문에 망 임대비가 들지 않아 20~30%, 심지어 절반 이상 저렴한 가격을 제안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통신사가 전체 CDN 서비스 가격을 CDN 업체에 임대해준 망 가격 이하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임대한 망에 솔루션을 얹어야 하는 전문업체는 가격으로 승부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여기에 전자결제나 데이터센터 호스팅 등 다른 서비스를 결합해 제공하기 때문에 전문 CDN 업체는 나날이 경쟁력을 잃어간다.

한 CDN업체 관계자는 “저렴한데다 여러 서비스를 같이 제공받는다는 점 때문에 통신사 CDN 서비스를 쓰는 고객이 점차 늘어난다”며 “아직은 기술력 면에서 전문업체가 낫지만 통신사도 10년 가까이 사업을 하면서 노하우를 갖춰가고 있어 결국 가격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구축 사례로 삼을 만한 큰 고객사 사업의 경우 출혈경쟁이 빈번하게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고객사에서 통신사가 제시한 가격을 들이대며 가격 인하를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원가 이하로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모바일 활성화와 대용량 트래픽 증가로 CDN 사용률과 매출은 늘지만 순익은 오히려 감소한다는 주장이다.

네트워크 컨설팅과 설계, 구축을 책임지는 NI 업계에서는 또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통신 회선 설치와 관련이 없는 순수 내부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사업에도 통신사가 회선을 무기로 참여해 사업을 수주하는 일이 잦다는 설명이다.

해당 통신사 회선을 쓰고 있는 고객은 ‘회선 사용료 인하’나 ‘무상 유지보수’ 등의 조건 때문에 결국 통신사를 택할 수밖에 없다. 공공 분야에서는 대기업 참여 제한 때문에 통신사와 부딪힐 일이 없지만 그 밖에 시장에서는 NI 업계의 고민이 깊어진다. 통신사는 사업 수주 후 여러 협력사에 사업을 위탁하기 때문에 결국엔 장비 제조사의 마진도 낮아진다.

한 NI 전문 업체 임원은 “회선을 포함하지 않은 NI사업까지 통신사가 참여하는 것은 대중소기업 상생에 역행하는 일”이라며 “하지만 불법이나 불공정거래가 아닌 이상 중소기업은 별다른 대책이 없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