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산하 SW-SoC융합R&BD센터(이하 센터)의 ‘SoC 설계 환경 지원 사업’ 대상 기준을 놓고 국내 팹리스 업계와 해외 반도체설계자동화(EDA) 업체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EDA 업체가 선정 기준을 강화한다고 나서면서다. 지원 기관인 센터마저 뾰족한 수가 없어 논란이 깊어질 전망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SoC 설계 환경 지원 사업 대상 선정 기준이 강화될 분위기다. 해외 EDA 업체가 국내 일부 팹리스 업체의 불법 복제 EDA 툴 사용 조사에 착수하면서 지원 대상 기준을 기존보다 엄격히 할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EDA 툴은 반도체 설계·검증에 활용되는 소프트웨어(SW)로, 시높시스·케이던스 등 외국 업체들이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SoC 설계 환경 지원사업은 센터가 EDA 업체로부터 프로그램을 사들여 중소 팹리스 업체에 사용료를 받고 이를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형태다. 선정 기준은 EDA 업체가 정한다. 시높시스는 근로자 수 30인 이하 비상장 기업, 케이던스는 근로자 수 80인 이하 기업 등을 각각 기준으로 뒀지만 그동안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업체라도 자체 심사를 통해 선발, 지원해왔다. 그러나 최근 한 EDA 업체가 기존 지원 대상 업체들을 포함해 원래 기준을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 팹리스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팹리스 업체 다수가 고가의 EDA 툴을 구매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조한진 SW-SoC융합R&BD 센터장은 “대다수 팹리스 업체는 인건비 대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EDA 툴 구매 비용은 1년에 최소 3억원 정도로 업체 한 곳이 감당하기엔 무리”라고 말했다. 한 팹리스 업체 대표는 “가뜩이나 시장 상황도 안 좋다”며 “EDA 툴 지원까지 줄어들면 업계 전반에 타격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EDA 업체는 사업 본래 취지가 영세한 팹리스 업체를 돕는 것인 만큼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이다. EDA 업체 관계자는 “애초에 정한 규정을 지키겠다는 것일 뿐”이라며 “여유가 있는 업체들까지 지원하는 것은 사업 목적과 어긋난다”고 언급했다. 조 센터장도 “EDA 업체들이 프로그램을 공유하게 한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사실상 특혜를 받는 입장이라 EDA 업체들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원칙대로 지원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당장 충격이 큰 만큼 시기를 유예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팹리스 업체 대표는 “당장 기준 강화는 시기상조”라며 “팹리스 업체들이 일정 정도 성장한 후 구매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 전문가는 “센터에 내는 사용료를 올리든지 기준 강화 속도를 늦추든지 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