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테크노를 살리자” 뭉친 협력사들, 30억 채무 출자전환 결의

2000년 5월, 천안에 있는 충남테크노파크 부지 한쪽 축사자리에 한 기업이 둥지를 틀었다.

IMF 직후라 사업이 쉽지 않았다. 창업 아이템은 반도체 장비였다. 장비개발 과정에서 자본금과 대출금을 거의 다 까먹었다. 다행히 충남TP 등의 지원을 받아 파산은 면했다.

이후 모든 직원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 개발에 몰두, 휴대폰 고속검사 자동화 장비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제품보다 세 배나 빠른 획기적 제품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창업 6개월 만인 2000년 11월 처음으로 수주를 받았다. 창업 2년 만에 매출이 100억원을 돌파했다.

두 번째로 개발한 편광필름 비전 검사장비도 인기였다. 기술강국 일본도 알아주는 기술력을 자랑했다. 여세를 몰아 LCD장비 개발에도 나섰다. 매출은 계속 늘었다. 2004년 370억원을 넘었고 2007년에는 750억원을 달성했다.

창업 7년 만에 코스닥에도 상장했다. 액면가 500원인 주식은 한때 1만1000원 이상 갈 정도로 잘나갔다. 2008년에는 매출 1450억원을 달성하며 천억대 벽도 훌쩍 넘었다. 2010년에는 연결매출 3000억을 웃도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충남창업기업대상과 아시아벤처대상 등 여러 상도 수상했다. 고객사들이 주는 최우수협력대상도 받았다. LED 디스플레이와 전자부품, 태양광을 주력으로 하는 계열사도 세웠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어려움이 찾아왔다. 주거래처가 갑자기 거래를 끊었다. 매출이 급전직하했다. 2007년부터 시작한 신규 사업도 여의치 않았다. 급기야 지난 분기 말 회계법인 감사에서 의견 거절과 한정 의견을 받아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됐다. 지난달 24일부터는 주식거래도 중단됐다.

세 명으로 창업해 한때 매출 1조원을 꿈꿨던 충남 천안에 있는 장비 제조업체 에버테크노(대표 정백운) 이야기다.

자금 관리를 잘못해 상장폐지 어려움에 처한 에버테크노에 든든한 우군이 등장했다. 협력사들이다.

에버테크노와 오랫동안 거래해온 협력사 모임(에버회) 15개사가 중심이 돼 20개 협력사가 최근 30억원의 채무를 출자전환하기로 결의했다. 협력사들이 나서 어려움에 처한 에버테크노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특히 이들 협력사는 대부분 중소·영세기업이어서 출자전환 여력이 없음에도 에버테크노와 정백운 대표를 믿고 외상 대금을 출자전환 했다. 협력사들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데는 지난 10여년간 에버테크노와의 거래를 통해 형성된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용태 에버회 회장(대부EM 대표)는 “에버테크노가 설립된 이래 지난 14년간 거래해왔다”며 “정 대표가 배임 등 모럴헤저드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일만 하는 사람인데 자금관리를 잘못해 어려움에 처한 것이 안타까워 그 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회계법인으로부터 의견 거절을 받은 에버테크노는 지난 1일 거래소에 이의 신청을 했다.

정백운 대표는 “불과 2개월 전에 채권은행이 실시한 회계법인 결과에서는 계속기업으로의 가치가 높다는 평가가 나왔고, 지난해 어려운 가운데서도 연결기준 매출이 500억원을 넘었다”며 “이번 감사 의견은 너무 의외의 결과”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해외에서 자본을 유치하고 고객사로부터 300억원 이상의 구체적 수주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이 터져 안타깝다”며 “이번 출자전환으로 채무 부담이 감소하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각종 자산과 계열사 가치로 볼 때 잔여 채무에 대한 현금 확보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턴어라운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말레이시아 대기업이 자본 투자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그동안 부진했던 태양광 모듈사업 등과 LED 디스플레이 역시 회복되고 있어 상장폐지 사유 해소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편 거래소는 이달 중 에버테크노의 상장폐지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천안=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