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KT가 21년 전 IBM 인력감축에서 배울 것들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나이 든 KT 직원과 가족들은 뒤숭숭하다. 젊은 직원도 흔들린다. 부부 사원은 거의 ‘멘붕’이다. 선택의 시간만 냉정하게 다가온다.

[신화수 칼럼]KT가 21년 전 IBM 인력감축에서 배울 것들

KT가 대규모 명예퇴직을 추진한다. 일부 반발하지만 이 회사의 인력 과다는 익히 알려진 문제다. 경영 실적까지 나빠진 마당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래서 직원들이 침묵과 고뇌에 빠졌다.

명퇴는 황창규 회장 경영혁신의 일환이다. 어쩌면 그에게 최우선 과제일지 모른다. 전임 회장들도 늘 가장 먼저 고민했던 사안이다. KT가 거듭나려면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다.

인력감축은 다른 경영혁신보다 후유증이 심하다. 떠난 직원뿐만 아니라 남은 직원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 어떤 형태로든 사기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왕 할 것이라면 빨리 한 방에 끝내는 것이 낫다. 찔끔찔끔 구조조정을 하면 그 역효과가 횟수와 기간의 제곱으로 커진다.

1993년 꼭 이맘때다. IBM이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곱게 장사 치러달라고 기술 문외한인 루 거스너 회장을 데려왔다. 그런데 이 첫 외부인 출신 CEO는 전임 존 에이커스 회장도 추진했으며, 시장도 원한 사업 분할 계획을 철회했다. 고객 눈으로 통합 가치가 크다고 판단했다. 그 대신 적자를 끝낼 구조조정을 서둘렀다. 평생 고용을 폐기했다. 7월 말 드디어 대규모 인력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원성이 쏟아졌다.

그런데 인력감축은 전임 회장 때도 있었다. 다만 ‘해고’라는 단어 자체를 금기시하는 평생 고용 문화 속에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까지 속였을 뿐이다. 실제 퇴직자는 거스너 회장보다 전임 회장 때 더 많았다고 한다. 욕은 정반대로 얻어먹었다.

거스너는 ‘한번 크게 얻어맞는 것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고문보다 덜 고통스럽다’고 여겼다. 그래서 첫 감축계획을 ‘마지막’으로 크게 끝냈다. 남은 직원이 걱정 없이 일하라는 메시지다. 물론 “앞으로 여러분 자리는 여러분 실적에 달렸다”는 단서를 잊지 않았다.

감축 계획안도 직원에게 가장 먼저 공개했다. 4월 초 전 직원 이메일로 일찌감치 고백한 터다. 마냥 비용절감을 비롯한 긴축경영만 하지 않았다. 경영층 아래 핵심 간부들에게 처음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거스너는 그해 9월 전 직원 이메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회사 해체냐 유지냐가 가장 중요한 구조적 딜레마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업장 근무 환경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막대한 적자투성이였던 당시 IBM과 비교해 KT 사정은 매우 양호한 편이다. 그런데 직원들 분위기는 그때 IBM을 방불케 한다. 죄다 좌불안석이다. 계열사도 구조조정에 들어갈 테니 기댈 곳이 없다. 전·현 직원 간 유대도 사라져 KT 출신을 반기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KT 미래 자체가 불투명하니 떠날지 말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래서는 인력감축이 자칫 이도저도 아닌 채 사기만 떨어뜨린 에이커스 시절 명퇴 꼴이 난다.

황 회장은 인력감축이 ‘살아남기 위한 가지치기’가 아니라 ‘재도약과 성장 발판’이라는 확신을 직원에게 심어줘야 한다. 남든 떠나든 직원의 미래를 찾는 시도임을 일러줘야 한다. 그래야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나아가 반전 계기를 잡는다. 남는 이도, 떠나는 이도 더 ‘쿨’해진다. 살아남는 것이 비전이라면 너무 슬픈 일이다.

고강도 구조조정 이후 거스너의 IBM 10년은 어찌 됐을까. 직원 수는 과거보다 7만명 더 늘어났다. 그 이듬해 흑자 전환 이후 매출과 이익을 획기적으로 늘렸으며 고객 중심 솔루션 업체로 거듭난 덕분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