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히든챔피언 육성을 위한 산학협력…공대는 히든챔피언 육성을 위한 `마스터 키`

과학논문인용색인(SCI) 위주 대학평가와 재정지원이 국내 중소기업 연구개발(R&D) 경쟁력을 하락시켰다는 지적이 많다. SCI 논문 게재가 대학이나 교수평가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실용기술 개발이나 산학협력보다는 논문 중심 실험실 연구에 치중했다는 비판이다. 실제 지난 10여년 간 우리나라의 SCI급 논문 게재 건수는 30%이상 늘었지만, 같은 기간 대학의 산학협력 건수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특히 이런 현실이 산업현장과 동떨어진 연구결과 양산은 물론이고 산학 인력 미스매치, 대학 5~6학년 양산과 이로 인한 청년실업 문제 등 국가경쟁력 손실을 가져온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최근 ‘창조경제 전진기지화를 위한 공과대학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10년 간 이어져온 공대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 산학협력의 새로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실행과정에서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우리나라 ‘공과대학의 산학협력 활성화와 히든챔피언 육성’ 화두를 고민해 온 전문가와 긴급 좌담회를 실시했다.

◆참석자

△박희재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에스엔유프리시젼 대표,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차동형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정책관

△이건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

△김종민 루트로닉 연구소장

△사회=권상희 전자신문 정책팀장

◇사회(권상희 전자신문 정책팀장)=정부가 공과대학 혁신방안을 통해 공대 교육·연구의 현장지향성을 높이고, 우수 공학인재 양성에 나서기로 했다. 이번 정책에 대한 평가는.

◇박희재(산업부 R&D전략기획단장)=(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대학이나 교수가 SCI나 산학협력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기존 SCI 논문에서 성과를 만들어 온 교수나 대학은 굳이 산학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있다. 무늬만 산학협력을 하자는 것일 수 있다. 어느 것 하나로 100% 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한 가지로 100%가 아니고, 2가지를 적절히 조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동형(산업부 산업기술정책관)=길을 다양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이제 그 실행과정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의 문제다. 제도 자체로 볼 때 긍정적으로 본다. 논문에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들 모두에게 길을 열어준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건우(서울대 공대학장)=서울대에 산학협력 활성화를 위한 SNU컨설팅을 설립하면서 박 단장과 비슷한 걱정을 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기술지원 신청이 있을 것이냐의 문제와 함께 교수가 중소기업 기술지원 요청에 응할 것이냐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중소기업 기술지원 요청도 하루에 2~3건이 들어오고 있고, (걱정과 달리) 교수들도 적극 대응한다. 비용지불에 있어서도 연간 1억원씩 과제에 쓰겠다는 중소기업도 있다.

지난 10여년 간 산업 현장과 동떨어져 있던 젊은 교수가 기업체와 연결되고, 산학협력 생각도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 공대 교수평가나 포상도 논문, 산업협력, 강의 등으로 3분의 1씩 했으면 한다.

◇박희재=조사에 따르면 2002년부터 지난 10여년 간 중소기업이 산학협력을 통해 기술개발한 사례는 절반 정도로 줄었다. 정확히 SCI 논문이 늘어간 시기랑 일치한다. 16조원 국가 R&D 비용(GDP 대비 2위)을 쓰고 있지만, 기업체를 위한 실용 연구비는 얼마나 되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철강 등 우리 주력상품의 핵심부품이나 소재의 대부분을 일본 중소·중견기업에 의존한다. 일본의 경쟁력은 전문기술을 가진 전문기업(대부분 중견기업)에서 나온다. 왜 우리가 중소기업 또는 산학협력을 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실제 우리나라 이공계 박사인력의 70%는 대학에 있다. 중소기업에는 3% 내외에 불과하다. 우리 중소기업 경쟁력은 대학과 별개일 수 없다. 산학협력은 우리경제의 핵심고리다.

◇이건우=서울대 공대만 보더라도 석·박사 과정 학생이 2000명이다. 교수도 320~330명 정도다. 정부출연연 3~4개 정도 규모다. 이런 규모에서 산업체에 역할을 못해주면 큰 낭비다. 히든챔피언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나라 미래는 없다. 언제까지 삼성, 현대만 볼 수 없다. 언제 노키아처럼 될지 모른다. 이 때문에 서울대는 산·학 공동연구를 위한 컨설팅 조직을 만들었다. 바로 SNU컨설팅이다. 기업의 요구를 프로페셔널하게 연결해 주기 위한 조직이다.

◇김종민(루트로닉 연구개발본부장)=우리 회사는 박사가 5명 있다.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대학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이 부분에서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다. 현재 교수(대학)의 연구방향을 좌우하는 큰 틀은 정부 연구개발펀드다. 원천기술 부분은 미래부나 교과부에서 하는 게 맞지만 산업부는 기술 제품화, 상품화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한다. 원천기술 부분은 세계 최고 수준 비교가 가능하지만 제품화, 상품화 관련 기술은 세계 최고가 필요없다.

◇박희재=대기업과 중소기업 인건비가 2배 정도 차이 난다. 중소기업이 맞춰주기 쉽지 않다.

최근 상황은 더 나빠졌다. 또 진급할수록 격차는 벌어진다. 중소기업 신입사원 임금은 대기업의 70%지만 임원이 되면 36% 밖에 안 된다. 누가 가려고 하겠는가.

◇사회=현실적으로 대학에서 곧바로 중소기업으로 연구 인력을 보내기 힘든 것 같다. 공동연구나 중소기업 인력 훈련이 방법인 것 같다.

◇이건우=대기업은 좋은 인재가 안들어와도 좋은 훈련,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그래서 최소 유지는 된다. 반면 중소·중견기업 현상 유지도 안된다. 이 때문에 기업체 4~5년 근무한 인력을 교육시킬 수 있는 공학전문대학원 설립이 필요하다. 이번 혁신방안에도 포함됐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법학·경영전문대학원처럼 1년을 강하게 훈련시키고, 회사로 보내고 회사 업무로 논문을 대체해 석사학위를 주면 된다. 공과대학의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차동형=히든 챔피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독일 히든챔피언의 탄생에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독일은 산업화 후발주자였다. 영국의 대량 생산구조를 피하기 위해 고민한 것이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중소기업 육성 전략이 탄생한 이유다. 우리 상황이 산업화에 나섰던 독일과 비슷하다.

또 다른 배경에는 독일의 프라운호퍼연구소가 있다. 민간연구소에 가까운 체재를 갖추고 중소기업과 호흡한다. 기업협력 정도에 따라 정부가 차등 지원한다. 스스로 R&D 역량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의 연구소 역할을 프라운호퍼가 했다. 우리나라는 대학이 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김종민=대학 인력을 뽑으면 중소기업에서 바로 쓸 수 없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에서 너무 첨단기술만 배우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이론적인 첨단이 아닌 현장에 필요한 아날로그 기술과 사람이다. 산업현장을 대학이 너무 모른다.

◇이건우=대학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존재한다. SCI 논문 실적을 위해 새로운 것을 하는 젊은 교수를 뽑는다. 페이퍼(논문) 실적을 많이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페이퍼만 많다면 학과에 필요없는 사람마저 뽑는다. 지난 몇 년간의 SCI 논문 위주의 교수나 대학평가가 우리 공과대학을 망쳐 놓았다.

◇차동형=산업부 3조2000억원 중 중소기업에 나가는 것이 43%다. R&D 자금이 출연연이나 대학으로 가면 기업과의 공동연구 등을 통해 중소기업 지식이나 인적자산으로 실체가 남길 수 있는 쪽으로 정부 R&D 방향을 잡을 것이다.

◇박희재=영국은 산업체 과제를 하는 교수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진다. 공대 교수로서 산업체 과제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분야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사과정 기업과제를 지원하고, 결국 기술적 리더십을 산업체에서 인정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학생들도 어떤 회사랑 무엇을 했다는 것이 큰 장점이 된다.

◇사회=핵심은 교수나 대학 평가방식을 바꾸는 게 핵심인 것 같다. 그러면 정부의 R&D 지원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희재=지금까지는 논문만 써도 연구비가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결국 산업체와 연결된 과제에서 연구비 등을 많이 지원해야 한다. 이런 변화가 없으면 결국 기존 시스템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기존 논문 중심 연구비 시스템에서 산학협력 등에 연구비가 매칭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공대만이라도 산학협력 실적이 많은 교수, 연구실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이건우=대학이나 교수가 정부 과제를 선호하는 것은 산업체보다 연구비에서 오는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산업체 과제는 교수 입장에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때문에 기업협력 과제는 더 많은 자율과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김종민=대학의 마인드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 교수들은 아이디어나 기술이 금방 제품화되고, 시장에서 돈을 벌어줄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 중요한 것은 영업이고 시장이라는 점을 잘 모른다.

결국 시장과 괴리된 R&D가 진행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IBM은 영업하는 사람이 과제를 정한다. 시장이 원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부 R&D도 이런 식으로 정했으면 한다.

◇박희재=최근 대학원생을 만나면 오히려 중요한 기술은 주요 학술지에 발표하지 못하도록 한다. 우리나라는 16조원의 R&D를 통해 그냥 SCI 제출에 만족한다. 국제 사회에 엄청난 기여만 하고 있는 셈이다.

◇김종민=기업은 어느 대학에 어떤 기술이 있는지 모른다. 정부 차원의 빅데이터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정전기 관련 전문가는 어디에 있는지, 기업이 쉽게 파악할 수 만 있어도 산학협력의 기초가 만들어질 것으로 본다. 정부가 이런 조사를 해서 목록 같은 것을 띄워주면 훨씬 쉽게 찾고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결국 산업계가 주도하는 산학협력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이에 대한 생각은.

◇이건우=진짜 필요한 R&D를 해야 한다. 결과물을 생각한 연구를 해야 한다. 이런 부분은 산학협력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본다. 석사 학위는 졸업 논문이 없었으면 한다. 공대는 기업에 필요한 부분을 연구하고, 리포트를 하면 석사를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주치의 비슷한 것 개념으로 ‘루트로닉 석좌교수’ 등도 좋은 것 같다.

◇차동형=시기적으로 적절한 거 같다. 우리도 공대에서 창업한 기업이나 키운 기업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면 한 단계 발전할 것이다. 산학 간 인력 미스매치, 청년 실업을 해결해 갈 수 있는 단초가 여기(산학협력)에 있다고 본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