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 조사 등 공무활동을 방해한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의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공정위 조사활동 방해로 역대 최대 과태료 처분을 받은 기업 역시 삼성전자였다.
2000년 이후 현재까지 공정위 조사방해 현황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총 17건의 조사방해 사례 가운데 기업별로는 삼성전자가 가장 많은 3건을 기록했다.
다른 기업은 대부분 1회 조사방해에 그친 반면에 삼성전자는 지난 2005년 이후 총 세 차례 조사방해로 총 4억9000만원(기업 및 직원 포함)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단일 기업으로 과태료 규모도 가장 많다.
2005년 6월 삼성전자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를 조사 중이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팀은 삼성전자의 전산시스템과 개인컴퓨터상의 단가계약품의서 내용이 상이한 데다 단가품의계약서 내용이 수정된 흔적을 발견했다.
관련 서류 원본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공정위는 삼성전자 구매팀장 현 모 전무에게 전산시스템상의 하도급 관련 자료열람을 요구했고, 또 다른 간부 임 모 상무보에게는 문서 결재·통보 시스템인 ‘싱글’ 프로그램의 열람을 요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회사의 영업기밀 유출,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열람을 거부했다. 공정위는 삼성전자의 영업기밀보호를 고려해 혐의관련 자료 샘플을 특정한 후 전산시스템에 존재하는지 확인하자고 했으나 삼성전자는 이마저도 거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8년 삼성전자의 불공정 하도급거래 조사를 완료한 공정위는 당시로서는 하도급법상 최고 금액인 1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현 모 전무와 임 모 상무보에게는 공무원의 정상적 조사활동을 거부·방해한 행위로 각각 2000만원의 과태료도 부과했다.
삼성전자는 2012년에도 조사방해 행위 역대 최고 수준인 4억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2011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휴대폰 유통 관련 현장조사 과정에서 다수 임직원이 공정위의 조사를 방해하는 데 가담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보안담당 직원과 용역업체 직원이 공정위 조사공무원 출입을 지연시키는 동안 조사대상 부서원은 관련 자료를 폐기하고 PC를 교체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삼성전자는 오히려 보안규정을 강화하는 내용의 ‘비상상황 대응관련 보안대응 현황’을 마련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2005년에도 자회사 세메스 하도급 납품단가 직권조사 과정에서 대비 지침을 작성하고 서류조작에 개입하는 등 공정위 조사방해 혐의로 50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정치권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또 조사방해 관련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이어서 대기업의 공정위 조사 방해가 반복되는 현실을 지적,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평가했다. 최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공정위 조사방해 행위 제재를 강화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고 지난 9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했다.
이 의원은 개정안 제안 이유에서 “삼성전자 등 대기업마저 공공연히 공정위 조사를 방해하고 있고 조사를 방해한 사람이 승진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며 “과거에는 조사방해 행위에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지만 기업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처벌방법을 과태료로 변경한 후 조사방해 행위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자료 은닉·폐기, 접근거부나 위·변조 시 사업자·사업자단체에 2억원 이하 과태료, 임직원·이해관계인에게 5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현행 규정에서 과태료 대신 벌금을 내도록 했다. 질서 유지를 위한 금전적 징계인 과태료와 달리 벌금은 형벌의 일종으로, 30일 내에 납부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방해 행위에 대한 처벌이 약해 이를 개선하는 한편 다른 법과의 형평성을 맞추고자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방해 현황 /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