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최근 삼성전자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판결하면서 “삼성전자와 이동통신사가 사전 협의해 휴대폰 출고가에 미리 반영한 ‘부풀리기 장려금’ 비율이 26.06%에 달한다”고 적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15일 전자신문이 입수한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 제7 행정부 판결문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통신 3사가 2008년에서 2010년 사이 이른바 ‘짬짜미’를 통해 보조금으로 투입할 재원으로 휴대폰 출고가에 미리 반영한 금액이 전체 출고가의 26%에 달했다.
이번 재판은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전자의 출고가 부풀리기에 대해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리자 삼성전자가 법원에 항소하면서 이뤄졌다. 지난 2월 서울 고등법원은 삼성전자 청구를 대부분 기각하며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법원이 휴대폰 출고가에서 부풀리기 장려금 비중을 명확하게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송 도중 ‘부풀리기 장려금’ 규모의 실체가 밝혀진 셈이다.
법원이 밝힌 ‘부풀리기 장려금’은 재고소진 등으로 쓰이는 정상적인 장려금을 제외하고 위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오인·착각을 일으키고 이를 이용하는 것) 목적으로 휴대폰 출고가에 포함한 장려금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계약모델(제조사와 통신사가 미리 구매하기로 합의한 물량, 주로 스마트폰)에 적용된 부풀리기 장려금은 전체 장려금의 45.7%에 달했다. 피처폰 위주인 비계약 모델은 전체 장려금 대비 부풀리기 장려금 비중이 무려 71.8%였다.
소송 중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출시한 일명 ‘효도폰’ 모델은 공급가는 23만2771원인 데 비해 출고가는 45만5400원으로 출고가 대비 부풀리기 장려금 비중이 45.2%였다. 원가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출고가를 산정한 것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부풀리기 장려금이 26%, 45%라는 것은 휴대폰 출고가가 정상보다 26%, 45% 높다는 뜻”이라며 “삼성전자 등 제조사와 이통사가 부당한 보조금을 반영해 출고가를 높게 설정하고 이를 마치 할인해주는 것처럼 소비자를 속인 것을 법원이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공정위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삼성전자 측 청구를 “소비자가 단말기의 복잡한 가격구조를 모르는 상황을 이용한 기만적 행위”라며 “원고(삼성전자)는 공급 상품 판매촉진을 도모하기 위해 이통사와 협의해 위반행위를 했고 단순히 방어·수동적으로 추종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다만 영업비밀 공개 우려, 휴대폰 가격표시제 실시 등을 이유로 △삼성전자가 매월 공정위에 단말기 모델별 판매 장려금 내역을 명시하거나 △시정 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2년간 매 반기 종료일 30일 이내 판매장려금 내역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는 조항은 취소했다.
공정위는 이에 앞서 지난 2012년 삼성전자에 “단말기 보조금을 미리 출고가에 반영해 이를 이동통신 서비스에 가입하는 소비자에 지급하고 실제보다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처럼 오인시켰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삼성전자가 출시한 116개 모델이 대상이다.
김주한 미래부 통신정책국장은 “제조사 등이 출고가 부풀리기로 짬짜미했다는 공정위 결정에 제조사가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패소했다”며 “제조사에도 단말기 문제에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공정위 결정도 명백한 담합을 부당행위 정도로 봐주며 처벌 수위를 낮춘 것”이라면서 “확정 판결이 나는 대로 제조사 등을 사기죄로 고발하는 등 소송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기자 jeb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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