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애플 따라하기가 아닌 ‘전략 수정’의 결과다.”
미국 법정에 선 삼성전자 고위임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갤럭시 성공이 아이폰 특허 침해를 통해 이뤄낸 것이 아님을 방증하는 진술이어서 주목된다.

15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14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지원에서 열린 재판에 삼성 임원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법정에 출석한 손대일 자문(전 미국통신법인장)이 증인으로 나와, 자신이 일궈낸 성과는 현지 통신사들과의 협력 및 ‘갤럭시’라는 자체 브랜드의 힘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본사에서 신종균 IM(IT·Mobile)담당 사장 보좌역(자문)을 맡고 있는 손 전 법인장은 지난 2006년부터 7년간 법인장으로 재직했다. 2010년 10%에 머물던 미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을 2년 만에 30%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손 전 법인장은 ‘삼성의 전략 수정은 결국 애플 때문이 아니었냐’는 애플 측 변호사의 반대 심문에, “삼성의 전략에 애플의 영향은 미미했다”고 답했다.
애플 측 변호인단은 이날 법정에서 2012년 4월 손 전 법인장이 작성한 내부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애플 타도는 단순한 목표가 아니다. 우리가 죽고 사는 게 여기에 달렸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손 전 법인장은 이어진 증언에서 “삼성의 성공은 전혀 차원이 다른 전략에 따라, 새로운 마케팅 기법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통해 정면 승부로 이뤄낸 결과”라고 강조했다.
손 전 법인장은 “2011년 초 미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의 입지가 매우 안 좋았다”며 “그래서 ‘패러다임 전환’의 결단을 내렸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전에는 삼성의 미주시장 전략의 핵심은 ‘도매’ 위주였다. 현지 주요 이통사와의 거래에 집중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전략 수정 이후에는 자체 브랜드를 갖고 일반 소비자에 직접 마케팅하기 시작했다. 삼성은 현지 유통업체들과 함께 제품 전시·판매 공간을 신규 확보했다. 신제품 출시 시점뿐 아니라, 1년 365일 연중 광고를 집행했다. 그 결과, 2012년 말 삼성은 미국에서 가장 선호하고 인정받는 브랜드로 거듭 나게 된 것이라고 손 전 법인장은 밝혔다.
이 같은 법정 진술을 뒤엎기 위해 애플은 배심원단에 삼성 임원이 작성한 내부 이메일을 공개했다. 이 메일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과 스마트폰 플라스틱 케이스의 품질 우려 등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한편 이날 법정에는 삼성 측 요구로 구글 소속 엔지니어들도 증인으로 나왔으나, 애플 변호인들은 “이들은 삼성의 SW 수정 상황을 잘 모른다”며 반발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