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법원 "삼성 출고가 부풀리기 불법·고의성 짙다”

“원고(삼성전자)는 이동통신 3사와 협의해 공급가 또는 출고가를 실제보다 부풀리는 방법으로 장려금을 조성한 뒤 이를 대리점 등 유통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약정외 보조금으로 지급되도록 함으로써 자신이 공급하는 상품 등의 거래조건에 관해 위계행위를 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출처: 공정거래위원회
출처: 공정거래위원회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은 삼성전자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인 삼성전자의 대부분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전자는 2012년 공정위로부터 “단말기 보조금을 미리 반영해 출고가를 높이고 이를 소비자에게 지급해 실제보다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처럼 오인시켰다”며 시정명령을 내리자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고등법원은 어떤 이유로 삼성전자의 대부분 청구를 기각했을까. 전자신문이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했다.

[이슈분석]법원 "삼성 출고가 부풀리기 불법·고의성 짙다”

◇“의도적으로 출고가 높여 가격인하 착시 노렸다”

재판부는 삼성전자와 이동통신 3사가 사전 협의해 의도적으로 출고가를 높여 소비자가 마치 인하된 가격에 제품을 구매하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구매자에게 할인 형식으로 지급되는 보조금이 실제로는 소비자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유통망에 지급되는 장려금은 상품 판매가 부진할 경우 사후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조성되는 것”이라며 “하지만 삼성전자와 이동통신 3사가 조성한 장려금은 출시 때부터 유통망이 취하는 마진을 제외한 상당 부분이 소비자에게 약정 외 보조금으로 지급될 것을 전제했다”고 밝혔다.

‘짬짜미’를 통해 출고가를 미리 높게 설정하고 실제 원가와의 차액 대부분을 보조금 재원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혜택을 받는 일부 소비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높은 출고가를 그대로 부담해야 한다.

재판부는 이를 “원고(삼성전자)와 이동통신 3사가 사전 협의해 공급가 내지 출고가를 부풀린 형식적인 할인 행위”라고 지적하며 “대리점은 이통 서비스와 단말기를 결합 판매하며 출고가 기준으로 얼마만큼 보조금을 지급하는지 설명하기 때문에 (위반 행위가) 소비자의 단말기·이동통신서비스 결정에 영향을 미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제조사와 이동통신사 간 ‘짬짜미’가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기만 행위라고 본 것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외국에 비해 높은 국내 휴대폰 출고가는 제조사와 이통사가 소비자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것처럼 속이기 위한 것에서 기인한다”며 “공정위에 이어 법원까지 출고가를 부당하게 높이는 제조·이동통신사의 암묵적인 행위가 불법·고의성이 짙다고 인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 “부풀리기 없었고, 보조금 통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이번 소송에서 △가격 부풀리기를 통한 위계행위를 하지 않았고 △공정위가 문제 삼은 약정 외 보조금 지급에 삼성전자가 관여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 같은 삼성전자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통사는 가입자 유치수단으로 점점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할 필요가 있어 제조사에 분담을 요구했고 원고는 이동통신 3사 요구로 보조금 재원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며 “원고(삼성전자)는 이통 3사와 협의해 단말기 공급가에 이른바 정책비(제조사가 대리점과 이동통신사에 지급하는 장려금 비용)를 반영해 공급가를 결정하고 여기에 물류비용 등을 더해 출고가를 정했다”며 위반행위에 책임을 물었다.

삼성전자의 “휴대폰 유통가 보조금을 통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동통신 3사와 협의 당시 제조사·이동통신사 장려금 중 상당부분이 소비자에게 지급될 것을 충분히 인식했다.

재판부는 “원고(심성전자)는 이동통신 3사와 단말기 실소비자가도 협의했다”며 원고와 실소비자 사이에 거래관계가 존재한다고 봤다. 즉, 삼성전자가 실제 보조금 지급에 관여했고, 소비자와의 거래관계도 존재해 불공정거래 등 위반행위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후안무치” vs 삼성전자 “상고이유 있다”

삼성전자는 이 사안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삼성전자가 휴대폰 출고가 ‘짬짜미’에 법적 책임이 있는지 다시 따져보겠다는 취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정상적인 마케팅 행위를 불공정행위로 규정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사법부 판단을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법원 판결을 주시하고 있다. 2012년부터 ‘휴대폰 단말기 보조금 사기사건 민사소송’을 진행 중인 참여연대는 이번 고등법원 판결을 기점으로 소송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4월 현재 이 소송에는 100여명 원고가 참여해 삼성전자 등 휴대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를 상대로 1인당 30만원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합의 하에 출고가를 정상보다 높게 조작한 것은 사기에 해당한다”며 “(삼성전자 등) 패소가 확정되면 대기업들의 부도덕한 행태를 계속해서 고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짬짜미 사례가 밝혀짐에도 불구하고 이를 항변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동통신업계 역시 이번 소송과 여론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등 휴대폰 유통 구조개선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의도적이든 이동통신 3사 경쟁이 치열한 시장한계 탓이든 현재 휴대폰 유통 구조가 왜곡돼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보조금 대부분이 사용자에게 지급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소비자 오인행위를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피해 규모 산정 등은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획취재팀기자 jeb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