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팅, 시각 장애 학생에게 새로운 교육 제시

“여러분, 4세기부터 6세기까지 3개의 삼국시대 지도를 세기별로 놓아보세요.”

시각 장애인 학생들이 3D 프린터를 활용해 제작된 촉각지도를 만져본다. 학생들은 처음 접하는 촉각 지도가 신기한지 수업에 집중했다. 입체로 제작된 지도를 만져보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전성기와 당시 영토를 감각으로 익혔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뒤 3개의 촉각지도를 순서대로 척척 배치한다.

서울맹학교 학생들이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촉각지도를 활용해 수업을 하고 있다.
서울맹학교 학생들이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촉각지도를 활용해 수업을 하고 있다.

16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맹학교에서 3D 프린터를 이용한 점자 및 촉각 형상 제작기술 시연회가 열렸다.

시연회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서울맹학교가 공동으로 개최했다. 양 기관은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시각장애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입체 학습 자료를 공동 개발해왔으며, 이날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지속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현재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제작물은 점자문서나 책이 대부분이다. 사과, 나무 등 기초적인 사물의 외곽선을 점자의 솟아있는 점을 이용해 종이에 표현한 그림책이나, 지하철이나 관공서 안내판 위에 찍은 점자들은 있지만 판별이 어렵다. 특히 복잡한 지도의 등고선이나 형태가 복잡한 지진발생 과정과 같은 교육 자료를 만들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KIST 다원물질융합연구소 문명운 박사팀은 3D 프린팅 기법과 3차원 열처리 기술을 결합해 선, 곡면 등 다양한 형상과 높이가 가능한 3차원 촉각 제작물을 만들었다. 연구팀은 제작물의 내구성과 접착력을 강화하기 위해 열처리 기법을 표면에 도입했다. 개발된 연구 성과는 국내특허를 출원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성과를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교육자료를 만드는데 활용했다. 점자는 물론이고 3차원 촉각지도, 동물모형, 과학표본 등 다양한 자료를 제작할 수 있다. 또 글자 위주였던 점자 문서 안에 표나 그림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어 시각장애 학생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제작시간도 몇 시간 이내로 단축, 교육현장에서 빠른 활용이 가능하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김희진 교사는 “점자나 자체 제작물은 학생들에게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면서 “3D 프린팅으로 제작된 교재는 촉각 감도가 뛰어나서 학생들이 확실히 쉽게 수업내용을 인지했다”고 말했다.

시연회에서는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 첨성대 모형, 천마도 모형, 개구리가 알부터 개구리로 성장하는 과정의 모형 등 다양한 교보재가 전시됐다.

문명운 KIST 박사는 “학교 다닐 때 책에서만 봤던 빗살무늬토기를 3D 프린터로 제작하면서 처음 만져봤다”면서 “책으로 보면 한계가 있지만, 다양한 교육자료를 만들어 체험하면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박사는 “향후 일반 학생들을 위한 교육자료 제작 등 활용분야를 확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유훈 서울맹학교장은 “학생들이 눈으로 보지 못해 개념 형성이 어려웠다”면서 “3D 프린팅 같은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교육복지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외국의 경우 시각장애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국가적인 교육지원 기관이 별도로 있다”면서 “우리도 과학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융합기술을 적용하는 등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