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이다.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스페인에서 열린 ‘2010 MWC’에서 자체 운영체계(OS)인 ‘바다’를 탑재한 웨이브가 삼성 스마트폰에 날개를 달아 주는 얼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확신했고 자신했다. 현장을 방문한 최지성 사장도 SW분야에 13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리눅스 기반의 ‘미고(MeeGo)’와 노키아 심비안, 구글 안드로이드 등 다수의 스마트폰 OS가 존재해 있는 시장에서 하드웨어 경쟁우위에 있는 삼성이 자체 OS를 보유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삼성전자의 생각은 달랐다. TV·PC·냉장고·프린터 등 종합가전사인 기업 특성상 바다OS가 삼성의 스마트폰과 모든 가전제품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의 ‘삼성 에코시스템’을 염두에 둔 것이다.
4년이 지났다. 삼성전자의 전략 스마트폰인 ‘웨이브’는 어떻게 됐을까. 초기 40만원대 가격으로 소비심리를 파고들었지만 먼 바다로 나가지는 못했다. 시장에서 갤럭시 시리즈와 오버랩되면서 소비자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다른 스마트폰이 무수한 앱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웨이브는 삼성앱만 이용 가능한 ‘우물에 갇힌 첨단폰’이었기 때문이다.
한 때 삼성전자는 프린터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했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전자의 계륵’이 됐다. 내부에서는 프린터를 두고 깡통이라고 말하는 직원도 등장했다. 프린터가 사람 중심의 사무환경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통합출력관리서비스(MPS)가 연결되어야 하지만 삼성에는 이것이 부족하다. 스마트폰과 비교해 프린터가 몸통이라면 MPS는 애플리케이션에 해당한다.
후지제록스나 HP에 많은 MPS업체가 자신들의 솔루션을 써달라며 문전성시인 반면 삼성은 이들에게 비용과 인력을 제공하며 지원군을 요청하고 있지만 소수의 업체만 참여할 뿐이다. 삼성에 솔루션을 맞추느니 글로벌 기업에 공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무선사업부는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부서다. 미스터 애니콜로 불렸던 이기태 전 부회장은 휴대폰에 컴퓨터를 넣으려 했다. 역발상이었지만 너무 앞섰다. 2012년 이후 삼성전자는 세계 1위 휴대폰 기업이 됐지만 MPS를 연결할 혁신은 찾아볼 수 없다.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하드웨어 기술에 있다.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하고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는 집중력은 탁월하다. 다만 이것이 부품 최적화와 같다는 등식은 다른 문제다.
요즘 전자업계 CEO들이 모이면 삼성 스마트폰이 자주 식탁에 오른다. 그들의 결론은 한결같다. 삼성전자에는 기존 스마트폰과 확연히 다른 ‘뭔가’가 없다고 말한다. 키우고 휘게하고 또 더 밝게 했지만 HW 중심의 혁신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죽하면 카피켓 기업으로 소문이 났을까. 글로벌 휴대폰 1위 기업인 삼성전자는 수성만 있을뿐 퍼스트무버의 혁신은 없다.
향후 4년이 중요하다. 낮은 나뭇가지의 열매를 모두 땄다면 이제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가지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다리를 만들 혁신이 필요하지만 지금의 삼성전자에는 그런 혁신DNA가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한국경제에서 ‘삼성전자 없는 대한민국’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고객은 제품을 선택하고 사용하면서 제품에 담긴 기업의 존재 이유를 경험한다. 지금처럼 혁신 없이 비용만 줄이려 하다가는 비슷한 스펙이면서 가격은 훨씬 저렴한 중국 화웨이의 스마트폰을 어떻게 당할 수 있을까.
김동석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