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은행 창구를 가지 않아도 모든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비대면(非對面) 채널 시대가 개화했지만, 장애인들에게는 또 다른 차별이 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장차법 시행 이후에도 가장 차별이 심한 분야는 ‘재화·용역’ 부문이었다. 장애인의 경제활동과 직결되는 금융권리가 밑바닥에 있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금융업계는 장애인 서비스를 창구 기반의 대면 채널에만 국한해 제도를 만들고, 투자를 강화했다. 장애인 겸용 ATM이나 점자카드 등이 대표적 예다. 일반인과 똑같이 은행 창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2010년 국내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CD/ATM 표준이 제정됐다. 시각장애인과 저시력인을 위한 근접센서 설치, 화면과 안내음성, 금융거래 지원 범위 등이 표준화 돼 상당부분 성과를 냈다. 이듬해에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CD/ATM 설치 표준을 제정했고, 2012년에는 모든 장애인을 위한 CD/ATM 표준이 나왔다.
금융업계도 이 표준을 반영해 상당수의 ATM을 도입했고, 분야를 확대해 점자카드 표준을 개발, 보급 사업에 곧 착수한다.
문제는 비대면 채널 기반의 전자금융 서비스 이용 접근권이다.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와 금융사가 협력해 장애인과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전자금융서비스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천이 되지 않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앱 기반의 금융거래가 폭증하면서 장애인용 서비스 개발은 뒤로 밀렸고, OTP 발급은 물론이고 점자 통장 하나 만들지 못했다.
한국은행은 최근 모바일 기반의 전자금융서비스에서 장애인 차별을 없애기 위해 금융사와 재협의를 시작했다. 어떤 서비스를 어떤 방식으로 제공해야 할지 원점에서 시작하겠다는 의지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장애인들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 다양한 스마트 기기가 보급되다 보니 장애인도 비대면 채널 기반의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문이 가장 많았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거래 속성상 스마트폰 제조사와 이통사, 금융사, 결제 서비스업자가 협력해 통합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은 버튼이 없어지면서 점자 기능을 삽입할 수 없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첫 단계부터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를 대체할 ICT 기능을 기기를 만들 때부터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는 점자카드 보급에 이어 점자 통장 표준화 작업에 곧 착수한다. 또한 여러 의견을 취합해 PC나 스마트폰 기반의 전자금융거래 시스템도 장애인이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와 접근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비대면 금융서비스 개선을 위한 범부처 태스크포스(TF)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여러 IT를 장애인 범용 서비스로 확대, 융합하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전화(ARS) 이용에 음성지원과 접근성 강화를 위한 인프라 도입도 선결과제다.
최동익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은 “장애인의 금융서비스 이용은 사용 빈도를 떠나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표]영역별 장애 차별 현황 (단위: 건)
(자료: 국가인권위원회)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