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경제활동 폭이 넓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립적인 구조의 글로벌 강소 기업이 다수 탄생해야 그 나라 산업계가 비옥해집니다.”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58)는 최근 다시 회자되는 독일의 히든 챔피언 사례를 한국에 접목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이 같이 전했다. 기업의 매출이 특정 대기업에 집중된 구조로는 ‘히든 챔피언’은 어렵다는 얘기다.
히든챔피언은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 교수가 처음 쓴 용어로, 직원 수 50∼100명 사이의 중소기업 규모로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제품이나 서비스가 세계 시장 점유율 1∼3위 안에 드는 강소기업을 말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만나 ‘한국형 히든챔피언’을 키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메르켈 총리는 삼성전자의 성장 비결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독일의 관점에서 짧은 시간 안에 세계 시장을 점령한 삼성전자의 빠른 속도감과 저력을 존중한다”며 “하지만 한국 강소기업들이 대기업 하나에만 의존하는 수익구조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틈새시장을 노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마파엘 대사는 독일이 전 세계 히든챔피언의 절반 이상을 배출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우선 분권화된 경제와 세계적 수준의 기술역량은 기본이다. 또 그는 독일의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다.
“히든챔피언 대부분이 한 가문이 대를 이어 기업을 경영하는 가족기업입니다. 가족경영이 기업문화의 일부로 자리잡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때 다양한 강소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독일에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히든챔피언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대기업에 들어간 것과 동등한 수준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오히려 강소기업에 재직할 때 더 많은 자유와 책임을 경험할 수 있어 선호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한국 정부의 규제완화 방침도 환영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마파엘 대사는 “해외 기업에게 어려운 점은 그 나라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해외 기업이 일일이 특정 규제에 다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대사는 이어 “정치적인 패러다임 때문에 규제가 늘어나는 것은 좋지 않지요. 또 규제의 종류가 많고 적은 것도 중요하지만 균등하고 일관된 잣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법 자체의 품질도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마파엘 대사는 최근 독일산 의료 기기에 대한 보안 및 건강관련 인증제도가 강화돼 수입업자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기업과 독일 산업계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으로 조인트 벤처와 산학연 협력모델을 관심있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의 SK이노베이션과 독일의 콘티넨탈이 배터리 개발을 위한 조인트 벤처를 세웠는데 이 같은 협력 모델이 지속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은 환경 관련 기술과 IT보안, 의료기술, 전자 모빌리티 부문에서 향후 성장 잠재력이 높다”며 “한국 산학연과 프라운호퍼 등 독일의 첨단기술 연구소가 협력 빈도를 높일 수 있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독일에 진출을 원하는 기업은 독일무역투자연합(GTAI) 사무소에 문의해 상담 및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
△1955년 9월 28일 독일 브루흐잘 출생.
△1974년~1980년 하이델베르크와 베를린에서 법학을 수학.
2차 사법고시 후 만하임 검찰청 근무.
△1985년 독일외무부 근무.
△1989년~1993년 제네바 소재 나토 상설대표부 근무
△1993년~1995년 테헤란 소재 〃
△1995년~1998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근무
△1998년~1999년 브뤼셀 소재 나토 상설대표부 근무
△2000년~2002년 독일 정무국 부과장 역임
△2002년~2005년 도쿄 독일대사관에서 근무
△2005년~2012년 독일 유럽정책조정과장, 유럽국 담당관 역임
△2012년~2014년 현재 주한 독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