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협상 기간, 아끼는 B팀장이 사장실로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사장님, 지금까지 제가 회사에 이바지한 부분이 나름대로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연봉을 20% 정도 인상해주셨으면 합니다.” 회사 형편상 직원 연봉을 20%씩이나 인상해주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B팀장만 파격적으로 올려주면 다른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이 빤한 노릇이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하지만 B팀장은 업계에서도 소문난 실력자기 때문에 원하는 연봉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다른 회사로 옮길 가능성이 크다. 유능한 인재를 놓치고 싶지는 않다. 무리한 연봉을 요구하는 부하직원과는 어떻게 협상해야 할까?
2008년 LA다저스에서 주전 유격수로 뛰고 있던 라파엘 퍼칼은 2006년부터 꾸준히 올스타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잘나가던 선수다. 그런 그가 2008년 자유계약 선수 자격을 얻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고, 기다렸다는 듯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뉴욕 메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 많은 구단이 러브콜을 보냈다.
오클랜드는 4년에 4800만달러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고, 뉴욕 메츠는 무조건 최고 대우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퍼칼이 메이저리그를 처음 시작해 신인상을 받았던 애틀랜타도 적극적으로 나서 ‘고향 같은 구단’ ‘예전 동료들이 많은 구단’이라는 점을 내세워 설득했다. 심지어 언론에 “퍼칼과의 계약이 눈앞에 있다”고 발표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최종 계약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퍼칼은 3년에 3000만달러라는 다른 구단들보다 안 좋은 조건을 제시했던 LA다저스와 재계약을 한 것이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이 계약건의 비밀은 ‘중고 소방차 한 대’에 있었다. 사연은 이렇다.
언젠가 퍼칼의 고향인 도미니카의 작은 마을에 불이 났는데, 소방차만 있었으면 금방 진화할 수 있었던 불이었다. 그런데 가난한 이 마을에는 소방차가 없어 트럭에 물을 싣고 나르는 바람에 결국 마을 전체는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이 일이 퍼칼에게 마음의 짐을 얹었다. “난 성공한 고향의 자랑거리인데, 고향을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는가?”라며 자책하게 만든 것이다.
이를 안 구단주는 퍼칼에게 제안했다. “항상 고향 사정이 맘에 걸리지 않았나? 우리가 고향에 소방차를 한 대 보내 주겠네. 더는 고향 사람들이 큰 불 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리고 소방차에 자네 등번호와 이름을 새겨 주겠네. 고향을 생각하는 자네의 마음은 나에게도 참 감동적이네.”
이 제안은 퍼칼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예전 동료와 한 구단에서 뛸 기회, 더 많은 연봉을 받을 기회를 모두 뒤로 하고 결국 LA다저스와 재계약을 하게 만들었다.
혹자는 돈을 더 주는 구단과 계약해서 퍼칼이 소방차를 직접 사서 보내 주면 그만이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퍼칼을 움직인 것은 단순히 소방차 한 대가 아니다. 본인의 걱정을 함께하고 그 아픔을 나눈 구단주의 ‘진심’이었다. 즉 구단주의 진정성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퍼칼은 후에 이 결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다저스가 나와 내 고향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협상’이라고 하면 돈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로 협상가는 다르다. 그들은 돈이 아닌 ‘상대 마음의 빈자리’를 찾는 데 집중한다. 고향에 대해 마음의 빈자리가 있었던 퍼칼의 걱정을 함께 나눠, 내 편으로 만든 LA다저스의 구단주처럼 말이다.
누구나 하나쯤 마음의 빈자리를 갖고 있다. 학력에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라면 MBA를 공부할 가능성을 열어주겠다고 말해 볼 수 있다. 병원에 계신 부모님을 걱정하는 직원이라면 진심이 담긴 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과 꽃을 보내줄 수도 있다. 직원들의 고민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해결법을 함께 찾아볼 때, 그는 협상 테이블에서 돈을 양보하더라도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리더는 항상 부하직원의 마음속에 있는 빈자리를 찾는다.
협상을 앞두고 있는가? 그렇다면 협상 상대의 마음의 빈자리를 찾아 채워줄 방법을 먼저 생각해보자. 위대한 협상가의 탄생은 여기서 시작된다.
공동기획: 전자신문·IGM창조비즈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