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매뉴얼’은 무용지물. 제조업도 곳곳이 지뢰밭.
세월호 침몰 사고로 대한민국 전체가 슬픔에 잠겼습니다. 세월호가 우리의 자화상은 아닌지 모두 반성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심각한 안전 불감증과 사고에 대한 무능한 대응은 제조업에서도 흔히 나타납니다. 화학물질 사고들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몇 년 전 글로벌 소재 기업 A사는 한국에 화학 공장을 지으려고 검토했다가 결국 철회하기로 했답니다. 화학 물질을 다루는 제조공정은 100% 매뉴얼대로 따라야 하는데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미국·독일·일본이 제조 강국이 된 이유가 있지요. 그곳의 엔지니어들은 매뉴얼을 100% 따르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우리는 바보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위기는 사무실 현장까지 어김없이 적용됩니다. 미국 반도체 회사 B사는 국내 영업 사무소에서도 화재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정기적으로 모의 훈련을 실시하고 이를 감안해 사무실 구조와 비품 위치까지 변경한다고 합니다. 다시는 그 어떤 곳에서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되짚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나는 내 영혼을 바칠 각오로 출근합니까?’
경기도에 위치한 소재부품 업체 C사의 공장 출입구에 걸린 문구입니다. 다소 전투적인 문구에 방문객이 당황하는 일도 다반사. 출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겠지요. 더욱이 요즘 시절에 영혼까지 바치라고 젊은 직원에게 강요하면 오히려 반감을 살 수도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이것이 국내 소재부품 업계의 현실이라는 C사 사장의 의미심장한 한마디. “이 정도 굳은 각오 없이는 그냥 안하는 게 좋거든요, 죽기 살기로 해도 어렵습니다.” 20여년 가까이 제조업 환경에서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껴지는 말입니다. 사장은 숱한 시련 속에서 직원들의 강한 정신력과 개척 정신을 몸으로 체험했기에 이런 문구를 걸었다지요. 그런 강한 정신력이 자신감을 키우고, 이 자신감이 세계 1등 제품을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파이팅!
○…‘삼성’ 얘기는 빼주세요.
최근 전자신문과 삼성전자 사이에 벌어진 ‘희대의 소송’ 건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도 많이 알고 계시겠죠. 전자신문으로서는 언론이 해야 할 책무와 정당한 기능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불똥이 엉뚱하게 튀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여파가 삼성전자 협력사에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삼성전자 협력사 D사 관계자와 통화하던 중 “전자신문과 삼성전자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 있으니 우리 회사 내용에 삼성전자 얘기는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D사로서는 괜히 밉보일까 걱정된 탓이죠. 삼성전자가 D사에게 사전 경고를 했는지 모르지만 협력사 생사여탈권을 쥔 ‘힘’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100년 가는 기업이 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견제와 균형’
기업을 경영하는 데 제일 중요한 뭘까요. 견제와 균형이라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 최근 소재부품 업계에서는 1세대 창업자들이 뒤로 물러나고 2세 경영자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업을 물려받은 이들의 스타일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죠. 사출 업체 E사 사장은 선친이 키운 인물들을 대부분 퇴사시키고 자신의 측근을 중심으로 임원진을 구성했습니다. 젊은 피를 수혈한 E사는 처음에 잘 나가다 최근 고전하고 있습니다. 경험 부족이 원인이지요. 광학 부품업체 F사는 E사와 180도 다른 타입입니다. F사 사장은 선대 임원의 말을 너무 잘 들어 문제라고 합니다.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 법이 없고, 노회한 임원의 말만 듣다 보니 회사에 혁신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무리 중소기업이라도 조직 내 세력 간 견제와 균형은 오랫동안 쌓인 경영의 철학이지 않나 싶습니다.
매주 금요일, ‘소재부품가 뒷이야기’를 통해 소재부품가 인사들의 현황부터 화제가 되는 사건의 배경까지 속속들이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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