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미국과 달라도 너무 다른 한국 기술인 대우

[신화수 칼럼]미국과 달라도 너무 다른 한국 기술인 대우

미국 기술인들은 분을 삭였고, 한국 기술인들은 부글부글 끓었다. 구글, 애플, 인텔, 어도비 네 회사가 인력 스카우트 자제 담합 소송을 피하는 합의금으로 3370억원을 낸다는 소식에 양국 반응이 이렇게 엇갈렸다. 집단소송을 낸 미국 기술인들은 소를 거둬들였다. 합의금도 컸지만 기업에게 경종을 울린 것이 만족스럽다. 한국 기술인들은 스카우트는커녕 직장조차 맘대로 옮길 수 없는 현실에 화만 치민다.

실리콘밸리 기업이 스카우트 자제 담합을 한 목적은 분명하다. 잦은 스카우트로 인해 몸값이 뛰는 것을 막아 인건비 부담을 서로 덜겠다는 의도다. 고용된 기술인들은 제 능력을 알아본 기업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을 기회를 박탈당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6만4000여명이나 집단소송에 참여한 이유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설계·개발자부터 애니메이터, 그래픽 디자이너까지 하는 일은 달라도 생각이 같았다.

한국 기술인은 미국 기술인이 부러울 따름이다. 그들이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을 익히 알지만 이렇게 스카우트 담합에도 소송을 걸어 이길 정도로 센 힘과 지위를 새삼 확인했다.

우리 기술인 현실은 이렇다. 퇴직 후 곧바로 같은 분야 기업으로 옮기거나 창업을 하지 못한다. 통상 1~3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기술 유출로 고발이라도 당하면 소송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피고용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보다 기업의 기술 유출 방지와 영업비밀 보장을 더욱 중시한다. 판례도 그렇다. 기술인은 동일계열 이직과 경업 금지 제한을 명시한 고용계약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서명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 힘들여 개발한 기술과 영업 비밀을 마땅히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이직·경업 제한이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기업 비밀을 몰래 빼돌릴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까지 피해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일부 악의적 행위를 막고자 모두를 잠재적 기업 비밀 탈취자로 여기는 셈이다. 기술인을 향한 모독이다.

미국에선 불법이다. 심지어 고용 계약기간을 지키지 않을 때 금전적 배상을 고용 계약에 담는 것도 불법이다. 백번 양보하자. 우리 기술인이 평생고용이라도 보장을 받았다면 이런 계약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약속하는 기업은 없다.

기업이 기밀을 지키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출을 차단할 업무 프로세스와 솔루션을 갖춰야 한다. 퇴직 결정과 동시에 개인 사물 외엔 손도 대지 못하게 하는 외국 기업 행위는 야박하기는 해도 일리는 있다. 이렇게 예방했는데도 기술이 유출되면 소송으로 풀어야 한다.

더 근본적인 예방책은 인재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도록 대우를 잘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은 고용 계약과 소송 가능성을 빌미로 대접도 아낀다. 중소기업은 대우를 잘해주고 싶어도 자금 여건상 하기 어렵다. 파격적인 보수는 아니더라도 경영인이 관심을 보이고 동기부여라도 잘 해줘야 한다. 보수보다 인정을 받지 못해 직장을 옮기는 기술인도 많다고 한다.

문제는 중소기업이 공들여 키운 인재를 대기업이 이름값으로 채갈 경우다. 정부가 나설 때다. 대기업 입맛대로인 불공정 거래 행위와 하도급 행태를 바로잡아 중소기업이 제대로 숨을 쉴 여지만 잘 만들어 줘도 이러한 이직은 많이 준다.

기술로 밥을 먹고 사는 기술인이다. 한국에서 기술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 그러니 ‘창조경제 역군’ ‘기술 입국’ ‘기술 선도’와 같은 구호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미국 기술인들이 한국 기업 경영인과 정책 당국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네 기술인들은 안녕하십니까?”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