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산업계에 비보가 날아 왔다. ‘환경오염 피해 배상 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환구법)’이 환노위 의결을 거치면서 산업계가 요구한 규제 완화 문구가 삭제됐다. 산업계는 또 하나의 규제 신설에 즉각 반발했고 지금은 법사위 통과 저지 의지를 보이고 있다.
환구법은 환경오염 피해에 대한 책임 소재와 피해 보상 기준을 담고 있는 법안이다. 국민이 환경오염 피해 시 보상 과정 편의를 위한 것으로 취지는 좋았지만 일부 조항이 산업계에 부담을 늘릴 수 있어 논란이 되어 왔다.
핵심 논란은 인과 관계 추정이다. 당초 법안은 기업이 시설을 적법하게 운영해도 개연성만 있다면 환경오염 사고 원인으로 추정할 수 있도록 했다. 산업계는 반발했고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며 해당 조항의 수정을 요구했다. 관련 부처였던 환경부는 이를 수용했고 앞서 17일에는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적법 시설은 인과관계 추정을 배제하는 것으로 통과됐다. 결과적으로 해당 문구의 삭제 의결로 지난해 11월부터 산업계가 반 년간 들였던 노력은 도돌이표를 찍었다.
규제는 필요하다. 특히 자유경쟁체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부 집단의 방종을 막기 위해 규제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고가 터진 이후 처벌과 책임을 묻는 규제들의 연이은 등장은 씁쓸하다.
환구법 논란만 해도 그렇다. 합법적으로 운영된 시설도 책임을 묻겠다는 게 논란의 핵심인데, 합법시설 사고를 전제한다는 것부터가 아이러니다. 이는 사업장이 겉으로만 합법을 위장하고 안으로는 편법을 자행한다는 편견이 작용했거나, 사업장 운영 관련 기존 규제에 허점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 가정이라면 더 이상의 어떠한 규제가 신설돼도 마찬가지다.
사고는 벌어진 이후의 책임을 묻는 것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보단 기존 규제의 운영과 관리를 보강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처벌 수위가 아무리 높아도 기존 제도에 대한 감시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고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환구법에 앞서 지난해에는 화평법과 화관법이 산업계를 흔들었다. 안타깝게도 아직 많은 영세 사업장은 환구법은 물론이고 화평법과 화관법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규제는 분명 강화됐는데 사고 위험성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책임과 처벌 수위만을 강화하는 규제로는 사고를 예방하기 힘들다. 새로운 규제도 좋지만, 현 규제의 관리실태를 점검하고 보완하는데도 신경을 써야 할 것 아닌가.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