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실리콘밸리 천재들이 뉴욕으로 가는 까닭은?](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14/04/30/article_30171521768718.jpg)
인터넷은 온라인 비즈니스의 혁명을 초래했다. 인터넷 기반의 신경제 모델은 포털시대를 거쳐 소셜 네트워크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부의 대이동을 가져왔다.
이 과정에 실증을 느끼고 회의에 빠진 소프트엔지니어들은 자신의 뛰어난 재능이 너무 단순한 일에 투입돼 낭비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히려 자신의 기술·지식을 인류가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나 풀리지 않는 과학기술의 난제를 푸는 데 쓴다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데이터과학자로 인정받는 햄머 바커는 지금 세상을 뒤엎을 듯이 잘나가는 페이스북의 초기 멤버 중 한 명이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데이터 아키텍처를 설계하고 지금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방대한 빅데이터 베이스를 페이스북에 구축해준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이 성에 안 차자 2011년 페이스북을 떠나 오라클, 야후, 구글에서 일하던 친구들과 ‘클라우데라’라는 회사를 차리고 최고기술개발 책임자를 맡는다.
이 회사는 빅데이터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들과 솔루션을 개발해 제공한다. 개발한 데이터분석기술은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더 크고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이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어느 날 바커는 뉴욕의 한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클라우데라의 기술개발책임자 직함을 유지한 채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결정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곳은 바로 뉴욕 마운트사이나이병원의 에릭 사다트가 이끄는 게놈바이오센터다. 게놈바이오센터는 바커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주무르는 데 최적임자임을 직감했다. 전통적으로 병원의 데이터들은 다른 데이터와 달리 데이터의 종류나 구조가 다양하고 비대칭데이터가 많고 단순하지가 않다.
미래 의료서비스의 핵심은 이런 다양한 의료데이터들과 5~10년 안에 누구나 100달러가량이면 활용할 수 있는 유전체 데이터를 연결시켜 분석함으로써 의미 있는 결론을 추출해 환자 진료나 예방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의료가 앞으로 데이터과학과 융합되면서 새로운 창조비즈니스의 핵심 분야로 떠오르는 것을 햄머 바커는 먹이냄새를 맡은 표범처럼 직감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앞으로 의학의 세계는 숫자와 데이터가 주는 새로운 상상력에 의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영역으로 발전해갈 수 있다.
이렇게 도시 이름이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뉴욕이 새로운 과학과 첨단기술 기업들의 요람으로 변하는 데는 최근 퇴임한 블룸버그 전 시장의 특유의 기업가 정신이 기여한 바가 크다. 즉 그는 주로 패션과 예술, 엔터테인먼트와 금융, 소비도시로 각광받던 뉴욕을 새너제이에 못지않은 지식기반 경제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개혁작업을 조용하지만 과감하게 진행했다. 그 결과 뉴욕에는 실리콘앨리라는 새로운 하이테크기업 단지들이 생겨났으며 창업을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뉴욕시 정부는 과거 슬럼가들을 재개발하면서 신속하게 그들을 위한 인프라시설을 채워나갔다.
전 뉴욕시장 블룸버그는 현재 이러한 인프라시설들이 당장 어떤 먹거리를 창출할지 모르지만 데이터가 미래 성장의 밀알이 될 것이라고 믿고 미래 세대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했던 것이다. 또 뉴욕의 유수한 병원들이 마운트사이나이병원을 중심으로 컨소시엄을 만들어 게놈바이오센터 같은 것이 미래에 새로운 먹거리가 될 데이터비즈니스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굳게 믿으면서 9·11테러로 실의에 빠졌던 뉴욕을 화려하게 부활시킨 후 자랑스럽게 퇴임했다. 그의 과감한 미래지향적 포석은 전환점에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제호 분당차병원 암센터 교수 jeho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