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남부 흑해에서 쪽빛 바다로 툭 튀어나온 크림반도. 우리나라 강원도 넓이에 240만명이 거주하는 크림반도는 19세기 크림전쟁에서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활약했던 곳이다. 이 지역이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또다시 21세기 ‘화약고’로 변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65%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유럽으로 수송되는 통로다. 1·2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도화선이 석유였듯이 천연가스를 틀어 쥔 푸틴의 유라시아경제연합 창설 야심은 신냉전시대를 촉발하고 있다.
열강의 틈바구니에 처해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14세기 중세유럽이 종교전쟁의 중심이었다면 21세기 동북아지역은 총성 없는 경제전쟁의 중심으로 변모됐다. 그 중에서도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는 태평양과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새로운 물류허브인 동시에 에너지 분야 융·복합 비즈니스 모델 창출의 요충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에너지산업의 조종간을 잡고 있는 23개국 에너지담당 장관들이 한국에 모인다. 사흘 후에 열리는 5차 클린에너지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2010년 미국에서 1차 회의를 시작한 이래 다섯 번째다. 지난해 세계 에너지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에너지총회가 대구에서 개최됐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에너지 변방국가에서 중심국가로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이번 회의에서 에너지 부국인 미국은 전기자동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중국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자국의 핵심전략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초고효율기기와 스마트그리드 등 5개 분야를 제시한다.
우리 정부는 4년 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1차 클린에너지장관회의에서 에너지 효율개선을 위해 스마트그리드 국제협의체인 ‘ISGAN’ 출범을 주장했다. 이후 ISGAN 사무국이 한국에 설치됐고 매년 6월 서울에서 대표자회의가 열린다. MB정권의 레임덕 상황에서 정책불신을 그나마 해소할 수 있는 성과로 남았다는 평가다.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정부는 이번 클린에너지장관회의의 성공 개최를 자신한다. 당연히 행사는 성공적으로 치러져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쥐어야 할 국제적인 위상과 이니셔티브다. 회의는 안방에서 열린다. 지난 4년간 꾸준히 스마트그리드를 주창해 ISGAN을 이끌어낸 만큼 여기에 버금가는 또 다른 글로벌 협의체를 제시해야 한다. 미국이 제기하는 전기자동차와 ESS는 글로벌 시장에서 ‘기회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ESS는 ICT 강국인 국내 기업이 1위 자리를 예약해 놓은 상태다. 전기차·신재생에너지와의 융합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이고 지속가능한 협력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사실 지난 정부가 녹색성장을 정책기조로 인프라 확산에 나섰지만 뚜렷하게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태양광업계는 시장이 없다며 아우성이고 풍력업계는 환경규제에 발목이 잡혔다며 해외로 눈을 돌린다. 내수만을 바라보고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 기업은 없다. 이번 클린에너지장관회의가 좀 더 구체화되고 내실 있는 행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형식도 중요하지만 내용은 더 절실하다. 안방잔치가 집안잔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 씨를 뿌렸으면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농부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관계당국이 새겨들었으면 한다.
김동석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dskim@etnews.com